A short bio_Junkies

“Thanks for offering me to stay with you under the bridge, man… but I’m going rooftop with my girl tonight.”


All junkies seem to have a certain certainty. They seemed to have certain superiority. I don’t know if the pride comes from a sense of knowing something that the others don’t or a forced necessity from lack of it. Even when they lie, they lie so honestly. It’s like in the house of justice when you see the man in charge going in and out of the room of justice without a single change in their expression whereas their family would cry or shout according to the verdicts of the judge.


“He is to be remained in custody until the 25th July.”


“Oh my… it’s day after his birthday!”


Cracks and browns were reserved for the junkies and junkies were reserved for the foolish, uneducated, nameless crowds. The police told me that it’s dangerous to be here and asked me what I did. I told them that I was a university student. The woman police enlarged her eyes wide open and asked “So what are you doing down here?” But then again it’s not just the police. Even Monic told him off saying, “Why did you bring Cha here?”


I remember liking what I used to call “the coke sleep” It’s when I would have trains of images from the real life (in front of me) passing by as an assemblage of strong but unusual images. The images were not telling as to foretelling. I would use these images to have some positive impacts on the reality. We would be in a waste factory – like place with the sounds of electricity just next. I’d say something like “Let’s imagine that we are at the waterfall or at a riverside or something.” because the sounds of electricity to me were like water falling.


He would say “Listen to the various languages of stones, walls, shops and dogs then when you don’t hear them anymore, that’s when you write.”


He had a body like what I would say Siddhartha; a long and thin but boned body.

How I have started painting.


Like other artists, I concentrate all of my vital phenomena when I paint. It seems as if I am doing nothing, thinking nothing. I usually start a painting without making initial outlines or separate rough sketches, so I feel as if I am painting extemporaneously at the moment of painting. Naturally all my paintings come from the experiences of my life and are closely related to every part of my life. I think that life is itself art and that painting is a tool to reveal various traces of life. There are in some of my paintings dreamy descriptions, while imagination can dominate in some parts, and reality can be at work in others. The I of today paint the I of yesterday. In this sense, as I live a life in accordance with the circumstances of the moment, painting can be a diary that I paint instead of writing.


다른 작가들도 그런 것처럼 나 역시 그림을 그릴 때면 그 순간에 나의 모든 생명 현상을 집중한다. 그림을 그리는 순간에 나는 마치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듯하다. 나는 보통 밑그림이나 별도의 스케치 없이 바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는데, 그래서인지 내가 그림을 그리는 순간에 즉흥적으로 그리고 있는 듯한 느낌을 갖기도 한다. 하지만 물론 나의 모은 그림은 모두 내 삶의 경험으로부터 나온 것이고 내 삶의 모든 부분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나는 삶 자체를 예술이라고, 그림은 삶의 여러 흔적을 보여주는 하나의 도구라고 생각한다. 어떤 부분에는 꿈속 같은 묘사가 들어있을 것이고 어느 부분에는 상상이 지배할 수 있으며, 또 어떤 부분에는 현실이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매 순간의 상황에 따라 삶을 살고 있는 나에게 그림은 쓰지 않고 그리는 일기가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Hard to breathe

For different reasons

Muddy water muddy sky

Quinoa for lunch

Potato for dinner

There is no salt on the table

There is no salt in the air

But only Mapacho smokes swirl

There is a stoned Buddha on the floor

People start chanting


Sounds of wind

Sounds of Icaros

Green lines move from left to right

Then, some blues and reds

There is a man

This man follows me

His body is seen

But where is his head?

There is more than one man

They are coming towards me

They have torches in their hands

I want to get up and see

But my body’s immovable

Must be someone up there

I feel it’s staring at me

Then the fear disappears

That’s only after seeing what it was

Or have I chased it off from my own fears?

It is getting cold

Someone is crying

I force myself some cold splashes

They say a tree has 1500 different spirits

Everyone gathers around

We smile to each other

And hold each other’s hands

Everyone’s in need

In need to be here and now

Let’s swim in the river of floating leaves

Able to breathe better

Carbon dioxide is necessary for plants

There is enough in the air

We need oxygen that plants produce

Nu says he was left at the jungle when he was only 15

He had to live next to the tree for 5 years

He had to eat the whole tree

Then he is the tree

Butterflies do not regenerate when broken

But they still fly and fly

Hard to say goodbye

My timidity reflects his

We will meet again

We will meet again

Travel Writing_2011

A French woman walks hand in hand with a Moroccan man in the grand boulevard. Or maybe she is not from France at all but from Morocco. I would not know even after this long time in Morocco. I am in Ifrane and Ifrane confuses me.

I ask the taxi driver:

“Where are you from?

He says:

“Why, of course, from Ifrane. I was born here.”

I say to him:

“How is that possible??”

There is a small male donkey chasing a female donkey with his dingus rising and shining. The lass kick him with her behind legs but the lad rushes to follow her anyway.

I eat my lunch at the park overlooking rows of many neat and clean houses. A group of men in the silvery hair-tail fish suits and hats pass by with same bags. Military? Businessmen? Students?

Ifrane is in between Meknes and Azrou in the Middle Atlas. It is very strange to be here. I think I will pass Azrou and head to Beni Mellal. I finish off my lunch as quickly as possible and get a grand taxi out of this town.


여행할 때 보통은 그동안 가보고 싶어했던 곳을 선택해 가게 되지만 가끔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 가기도 한다. 가보고 싶었던 곳, 아니 꼭 가야만 하는 곳을 가는 경우에는 그 운명적인 장소와 지금이라는 시간이 만나기 때문에 더 이상 지도를 보지 않더라도 또한 호텔을 미리 예약 하지 않더라도 좋다. 어떤 끌림에 이끌려서 간 것인지라 무엇을 먹을까 이곳에서 얼마나 더 머무를 것인가 등을 굳이 생각하고 계획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하지만 간혹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 발이 떨어질 경우 그 곳에서는 무언가를 배워야 한다든지 혹은 어떤 유명한 곳을 찾아 가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슬로바키아의 브라티슬라바가 그런 곳 중의 하나였다.

사실 나는 오스트리아의 비엔나에서 한달 남짓 머물렀었고 거기서 프랑스로 넘어가는 일정이었다. 유럽은 알다시피 저렴한 항공권을 구매할 수 있는 방법이 많이 있지만 긴 여행을 계획한 터라 나는 더욱 저렴한 방법을 선택해야 했다. 그런데 저렴한 것을 선택한다는 것도 더 많은 다른 것을 보고 싶다는 욕구를 위한 핑계였을지 모른다. 아무튼 저렴한 비행기를 찾다 보니 비엔나보다는 브라티슬라바에서 빠리로 가는 비행기가 가격이 훨씬 저렴했고 비엔나에서 브라티슬라바까지는 강을 따라 배를 타고 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워낙 물을 좋아하기 때문에 프랑스에서 모로코에 갈 때는 비행기가 아닌 배를 선택한 적도 있었다.

아무런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은 데도 불구하고 이유 없이 끌리는 나라가 있다면 그와는 반대로 아무 이유 없이 끌리지 않는 나라도 있다. 사실 나는 동유럽 나라에는 끌리지 않는다. 체코, 헝가리, 루마니아 등 동유럽(그들 자신은 중앙 유럽이라고 설득력 있게 주장하는데) 나라에 많은 사람들이 가서 보고는 그곳들이 아름답다고 했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그 쪽에 끌리지 않았다.

슬로바키아는 이름은 멋있게 들렸다. 나는 소위 ‘남성적’ 소리와 ‘여성적’ 소리가 함께 섞여 있는 이름을 좋아한다. ‘슬로’ 처럼 처음에는 부드럽게 가다가 ‘키아’ 하고 강하게 나오는 이런 소리 말이다. 브라티슬라바 또한 그랬다. 그래서 비행기만 타러 다니지 말고 하루 정도를 머물기로 했다. 그리하여 4월 중순 어느날 나는 브라티슬라바에 도착했다.

비엔나에서 중형 배를 타고 브라티슬라바까지 가는 길은 참으로 독특하였다. 3면이 바다인 한반도에서 태어나서인지 강을 따라 가다 보면 다른 나라가 나온다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날씨는 비가 오다가 해가 비치고 구름이 끼기를 반복했다. 강가에는 많은 집들이 있었다. ‘그림 같은 집’이 여기 도나우 강 주변에도 있었다. 사실 집이라기 보다는 방갈로에 가까운 것이었지만 나에게도 하나만 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드니 그것은 나에게 집과 같이 보였다. 강을 따라가며 바라보는 자연은 반복되어도, 정렬을 이루어 서 있어도, 또는 거칠어도, 어떤 모습을 해도 자연스럽고 아름답다는 생각을 들게하였다. 결국에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자연에 들어있다는 것도 느꼈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숭고함에 빠져 있다 보니 어느새 슬로바키아에 도착 했다. 숙소를 찾아가는 택시안에서 잠깐 실랑이가 있었다. 말도 안되는 돈을 내라고 해서였다. 그리고 숙소에서 나와 허기진 배를 채우려고 식당에 들어갔는데 바깥에 써 붙인 메뉴의 가격과 안에 있는 메뉴의 가격의 차이가 두배나 되었다. 거스름돈도 주지 않아 달라고 해서야 무표정하게 거슬러 주었다.

그런데 여행 중에는 가끔 속아주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눈썰미도 있고 의심도 많아서 속지 않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사람이 많이 오지 않는 조용한 마을에서 이방인이 밥도 먹고 사진도 찍고 하니 일종의 ‘세금’ 같은 걸 내야 하지 않을까.

밥을 먹고 나자 ‘아직도 비가 오는데 나는 여기에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보고 싶은 사람들도 생각났고, 떠나온 사람들도 생각났다. 또한 앞으로 만날 사람들은 누굴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밖으로 나갔다.

브라티슬라바는 그리 크지 않았다. 비가 오는데 구시가지의 이곳 저곳을 걸어 다녔다. 대성당들도 보였고 성도 보였다. 비 때문인지 몇몇 영국인 관광객들을 제외하고는 사람들이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길가다가 성당에서 들려오는 미사곡들 말고는 조용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어떤 갤러리가 있길래 들어갔는데 거기에는 큰 판화가 하나 있었고 ‘CHA Cha …’라고 써있었다. 예전에 친구들이 내 이름을 줄여서 ‘차’라고 불렀는데 그냥  ‘차’라고 부르지 않고 ‘차 차’라고 불렀던 게 생각났다. 그 생각 때문인지 역시 여행은 친구와 같이 해야 해 라고 생각하면서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는 강가에 있었다. 강이 보이는 호텔이 아니라 강위에 있는 호텔이었다. 보텔이라고 부르는데 보트와 호텔을 합친 것인 듯 했다. 침대, 티비, 라디오, 샤워가 다 있어서 하루를 푹 쉬기에 완벽했다. 가장 마음에 든 것은 꼭 보트가 움직이는 것처럼 느끼게 해주는 커다란 창문이었다. 때마침 해가 지고 있는 석양을 한동안 바라보고 있는데 뭉클한 마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혼자 있으면 하게 되는 생각들이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럴 때 더 이상 운명, 우연, 신의 존재 여부, 도덕, 미학 등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는다. 이미 나만의 생의 철학을 나름 단단히 구축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나에게는 그 모든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사람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생명, 삶, 사람 이야기야 말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주제가 아닐까. 그런데 누가 전능으로 세상살이를 말 할 수 있을까. 창 밖으로는 물이 흐르는데 해는 움직이지 않으니까 이상했다. 그래서 정말 내가 쉬고 있구나 라고 느꼈다. 원래 보트 위에 있다면 어디론가 움직여 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샤워를 할 때 배가 한번 아주 심하게 흔들렸다. 순식간에 내 발바닥이 버티고 있는 바닥이 벽으로 바뀔 기세였다.

다음날 비행기를 타기 전에 시간이 있어서 유명하다는 현대 미술관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전날 밤 잠잤던 ‘보트’를 타고 바로 갔으면 좋았으련만 다시 가방을 챙기고 시내 버스를 타러 나갔다. 다누비아나(Danubiana)는 시내에서 먼 곳에 있었다. 먼저 Cunovo라는 마을까지는 버스를 타고 갔다. 황량한 평지를 지나 작은 일반통행 길 어딘가에서 내렸다. 마을   사람들에게 간신히 길을 묻고 갤러리가 있는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는데 날씨가 나에게 깊은 인상이라도 남기려는 것인지 난리법석이였다. 해가 쨍쨍하다가도 아주 거센 바람이 불고 또 비가 오기를 반복했다. 헬리콥터 소리를 내는 바람 때문에 제대로 걷기도 힘들었고 온 몸이 매맞는 듯 아플 정도였다. 그리고는 아주 긴 고속도로를 지나서야 겨우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렇게 힘들게 찾아온 곳이건만 그곳에서는 고작 현대 미술 작품 몇 개의 전시가 전부였다. 나름 미술사를 공부했기 때문이었을까, 방금 경험한 것이 미술사 그대로를 말해주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정말 고되게 힘들게 그러나 씩씩하고 용감하게 바뀌면서 더 좋아졌다가 더 나빠지기도 하기를 반복한 후에 만들어진 현대 미술은 나의 그런 생각과는 상관 없다는 듯 차가웠다. 하지만 이것 또한 하나의 언어임은 분명했다.

날씨도 차가웠고 사람들도 차가워 보였던 브라티슬라바에서의 하루였다. 그 이유는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이 말한 것처럼 슬로바키아가 외국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외국인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모로코 대중 교통

유럽이나 미국, 그밖의 선진 국가의 국민이 모로코로 여행을 갈 경우 현지에서 보통은 렌트카를 이용하는 편이다. 모로코라는 나라가 가지고 있는 다양성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자동차가 가장 편리하기 때문이다. 아틀라스 산맥, 대서양과 지중해, 사하라 사막 그리고 그 사이 사이에 있는 페즈와 같은 여러 도시들을 보려면 자동차로 여행하는 것이 유리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시간의 여유가 있고 단체여행이 아니라 혼자 혹은 둘이 여행을 하는 경우 자동차보다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이유는 교통비가 저렴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여행하는 나라에 우리가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버스를 타면 그 나라의 보통사람들의 모습을 더 잘 관찰할 수 있고 택시를 타면 기사와 이런저런 일상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모로코에는 기차는ONCF라는 국영철도가 하나 있는데 노선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즐거운 여행을 값싸게 할 수 있게 해준다. 예를 들어 수도 라밧에서 모로코 동쪽 끝의 알제리아 옆에 있는 우즈다까지는 침대가 있는 밤기차로 열시간 정도 걸리며 기차값은 우리 돈으로 4-5만원 정도이다. 또 카사블랑카에서 마라케쉬까지 일등석으로 타더라도 2만원이 안 들고 3시간 정도 걸린다. 탕헤르에서 페즈까지 이등석을 타면 1만 5천원 미만에 5시간 정도 걸린다. 개인적으로 나는 짧은 거리일 때 기차를 더 편하게 이용했다. 예를 들어서 카사블랑카에서 라밧 처럼 멀지 않은 거리는 기차와 버스 값에 차이가 없을 뿐만 아니라 기차 시간을 미리 알아보지 않아도 되니 편리했다. 기차에는 짐을 가득 실은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있었지만 아이들도 많았다. 핸드폰에 저장해 둔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듣거나 기차 문을 열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서 담배를 피우는 아이들도 있었다.

출발시간이 비교적 정확한 기차와는 달리 시외버스는 따로 버스 시간표가 없는 편이다. 시간표가 있더라도 그냥 가서 커피 한 두잔 정도 마시고 타면 된다. 나는 모로코를 여행할 때 버스를 가장 자주 이용했는데 한번도 내가 알고 있는 시간에 버스가 출발한 적이 없다. 그냥 버스에 인원이 꽉 차면 떠나는 것이다. 그리고 버스는 100% 꽉 찬다.

버스표를 사는 일도 재미있는데 버스 정류장 (gare routier) 에 들어가면 여러 남자들이 큰소리로 말하는 것을 듣게 된다. 한쪽에서는 카사블랑카 티켓을 판매하는 남자가 “Casa, casa, casa” 를 외치고, 그 옆에서는 탕헤르 티켓을 판매하는 또 다른 사람이“Tange tanger tanger” 라고 외친다. 그걸 보면서 나도 티켓 파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그것은 활기차고 독특한 풍경이었다.

간혹 관광객을 보면 천원, 이천원 정도 올려 팔기도 하는데, 나는 미리 현지인들에게 가격을 물어보고 들어갔었기 때문에 속아 넘어가지 않았다. 그리고 들어가자마자 그들이 영어나 불어로 말을 걸더라도 “앗쌀람 알레이쿰”이라고 말한 다음 보기에 가장 순수(?)하거나 정직해 보이는 청년에게 가서 티켓을 사면 속을 일은 없을 것이다.

표를 산 후 버스를 타면 물건을 파는 사람들이 하나 둘 들어온다. 금(?!) 목걸이, 팔찌, 시계, 선글라스, 양말, 과자, 음료, 휴지 등 정말 다양한 물건들을 팔러 들어왔다가 버스가 떠나면 그때서야 뛰어내린다. 물건을 팔러 들어온 사람들이 나가고 한 두시간 정도 늦어버린 여행객이 헐떡거리면서 버스에 뛰어 올라타면 그때서야 버스는 떠난다.

나는 모로코를 여행할 때 하도 현지인 흉내(?!)를 많이 내 오죽하면 그곳 사람들이 나보고 베르베르 사람이냐고 묻기도 했고 그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다. 베르베르족은 산에 사는 한 부족인데 언어도 다르며 훌륭한 상인으로 또한 인색하기로도 유명하다.  어떤 나라를 가나 느끼는 것이지만 새로운 환경이나 경험에 재치있게 대처하고 그 나라 사람을 존중심을 가지고 대하면 그들의 다른 점으로 겪게 되는 경험은 늘 재미있는 사건과 추억으로 남게 된다.

나는 모로코에서 한번도 벽 시계가 제대로 돌아가는 집을 본적이 없다. 과장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왜냐하면 언젠가부터 유심히 시계를 찾아보게 되었는데, 한번도 시계 바늘이 멈춰있지 않은 시계나 정확한 시간을 가리키고 있는 시계를 보지 못했다. 어쩌면 시계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그곳에서 하루를 나누고 있는 것은 시계바늘이 아니라 사람들이 어디에 있건 멀리서나 가까이서 들려오는 모스크의 기도 시간을 알리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그것 말고는 그들은 시간을 굳이 나눌 이유도 없을 지 모른다.

모로코에 가기 전에 읽은 책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서양 여자가 모로코에 잠깐 머물렀었는데 하루는 옆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아! 지금 몇시예요? 약속이 있는데” 라고 말하자 옆 사람이 “여섯시예요. 약속시간이 언젠데요?” 라고 물었다. 여자가 “어머, 약속시간이 다섯시인데, 어떡해요, 늦었어요!” 라며 놀라자 옆 사람이 다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 그렇다면 지금은 네시 반 밖에 안되었어요. 지금 가면 되겠어요.” 좀 과장이 섞이기는 했겠지만 현지에 가보니 정말 실감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우체국 같은 곳을 가보면 볼 일이 있어 들어온 사람들이 꽉 차있는데도 그리고 점심시간이 끝난 지 한참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우체국 직원이 아무도 오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또 누구에게 나 늦었다 라고 말하면, 괜찮아, 괜찮아, 문제없어 라고 말했다. 사실 이런 일들은 살다 보면 분명 짜증스러울 때가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정신을 차릴 수 없게 너무나도 빨리 돌아가는 한국에 있다 가서 더 그렇게 느낀 것일까, 여행자로서는 이런 편안함, 여유로움, 느림이 그 어떤 물질적 성취의 의미를 훨씬 뛰어넘는 소중한 것으로 느껴졌다. 그런 것은 분명 우리가 잃어버린 중요한 부분이며 우리 삶의 물질화, 기계화가 가속화하면 할수록 앞으로 반드시 회복해 나가려고 노력해야 할 정신의 영역인 듯 했다. 이상한 것은 이런 곳에서 지내다 보니 나만의 시간도 훨씬 많아지고 하루도 훨씬 더 긴 듯했다. 마치 하루가 길고 길었던 유년시절로 내가 돌아가 있는 듯 했다.

모로코에는 택시가 두 종류이다. 하나는 타자마자 떠나지만 하나는 손님들이 꽉 차야 떠난다. 바로 그랑 택시와 쁘띠 택시가 그것인데 그랑 택시는 먼 외곽으로 장거리를 가는 택시이고 쁘띠 택시는 시내에서 움직이는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택시이다. 다른 점은 쁘띠 택시는 가끔 합승을 하기는 해도 원칙적으로는 개인이 타는 것이고 그랑 택시는 여러 사람이 합승하는 택시라는 점이다. 최대 6인까지 합승하는데 운전석의 운전사 옆에 2명이 타고  뒤에 4명이 탄다. 보통 한 도시의 외곽에는 꼭 그랑 택시가 모여있는 승차장이 있고 택시는 사람이 꽉 차면 그때 떠난다. 그런데 모로코는 이상하게도 남자들은 거의 다 말라 있고 여자들은 거의 다 퉁퉁하다. 한번은 짐이 많은 아줌마와 동석했는데 난 거의 엉덩이를 들고 한쪽 팔은 뒤로 뻗어 옆 사람과 어깨동무라도 하듯 하고 몸은 가슴쪽으로 잔뜩 움추려 모으고 가야만 했다.

그랑 택시

그랑 택시의 장점은 뭐니뭐니해도 가격이다. 천원, 이천원만 내면 꽤 먼 시외까지 갈 수 있다. 카사블랑카에서 라밧까지 오천원 정도면 된다. 하지만 내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차종이다. 그 전까지 차는 뭐 다 거기서 거기지 했지만 그랑 택시를 본 후에는 꼭 그런 차를 구입하고 싶었다. 빈티지 모델이라서 구입하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언젠가 나도 그랑택시를 한대 몰고 다닐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쁘띠 택시가 도시마다 색이 다르다는 점이다. 라밧에서는 파랑색이고, 페즈에서는 빨간색이며, 태투안에서는 노란색 이다. 버스를 타고 여행하다 보면 어떤 도시를 지나쳐 다음 도시로 갈 때가 있는데 나는 그때마다 창 너머로 택시의 색깔을 보고 “여기는 하얀색이군” 혹은 “아니 노란색이라니!” 라며 혼자 중얼거렸다.

쁘띠 택시들은 대부분 요금기를 갖추고 있지만 간혹 기계가 작동하지 않거나 요금기가 아예 없는 택시도 있다. 그럴 때는 값을 미리 물어보면 된다. 택시 기사들은 한번도 택시 값을 더 부른 적은 없다. 어쩌면 동양인을 배려하는 마음에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내 경험에 의하면 그들은  외국인이라고 거짓말을 쉽게 하는 사람들은 아니다. 이상하게도 모로코에는 도둑이 많다고 하고 소매치기도 많다 하지만 비교적 젊은 여성인데도 나는 그런 것을 경험해 본 적이 없다. 내가 타인을 좋게 보면 그들도 나를 좋게 본다는 말이 맞는 듯 하다. 하지만 혹시 택시 안에서 요금을 너무 많이 부르는 것 같다 싶으면 “Ma’ eindish leflouss” (돈이 없어요!) 라고 외쳐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러면 분명히 처음에는 다툼이 있겠지만 바로 좋게 끝나는 특별한 경험을 할지도 모른다.

Travel Writing_2012

The days I stayed in Cusco, Peru were all sunny but loud everywhere. Quechua people, indigenous ethnic group of several South American countries, were wearing very colourful clothes. Like their clothing, their works of art were colourful, too. I encountered a lot of paintings done by the local artists, and most of them used primary colours a lot. There were not the grand-type museums and galleries we easily find in any famous city, but I thoroughly enjoyed running into small spaces that were full of paintings and artifacts in the streets of Cusco.

One of the clichéd paintings that many boys were selling in the street was that of Macchu Picchu. Those paintings were all done in the same angle, made exactly same perspective, and the colours were more or less identical too. Furthermore, they always focused on the illusion of man’s profiled face against the mountain peaks behind the ‘lost city of the Incas’

One boy, with crummy folder of sketches and paintings, ready to fall out, approached me while I was sitting on the bench in the square. He said, “I am Picasso.” I replied, “No, no, YO soy Picasso!” Then the boy said without smile, “No, you are Mona Lisa.” I guess Mona Lisa must have been the first name that came to his mind as a woman’s name to do with art? When I told him that I am Picasso too, I simply meant that I paint too, like you do. He realized quickly I was not going to buy his paintings, so he left me and disappeared through the streets of tourists.

The city of Cusco was crowded with tourists. I suspect it may be the same as I am writing this article. They were from all over the world and all of them carried big cameras with them. Some even had several cameras, including the smartphone. I noticed that many people passing by the great monuments or the famous statues, without even looking at them with their own eyes, were busy clicking their cameras. I think that their first viewing of let’s says some old Cathedral in the middle of the main square was done by the guidebook they held in their hands. Their 2nd viewing would be through the lenses of their cameras. Their 3rd viewing would be, ghastly put, when they are tidying up their hard disks 5 years later.

Oh, I forgot. Perhaps they might look at them again while replying to the comments made by their friends back at home who writes “OMG, I envy you so much!” on the Facebook. This may sound a little bit harsh, but I cannot help noticing it. I always feel that the way people are so busy capturing the scenes and monuments through their camera is like the great Empires attempting to occupy as many lands as possible. I, personally, feel, when I take photos, that I am taking part of something from something’s or someone’s soul. The way I try to be careful with camera has nothing to do with any artistic value of what are good angles and what are good views.

Since a close friend of mine suggested that I should become a film director when I was barely 13 years old, I did really start wanting to make films. Just as any film buff would do, I was enthusiastic to see all sorts of cinemas for many years. Talking with other people, at some venues in the cinema, about the film we watched was a great fun. Now I still love watching films, especially the old ones, but I am not as excited as I used to be when I went to the cinema in the past.

The abundance of images tires me immensely. Every day whether we want or not we are faced with some sort of images including moving images everywhere. Even if you don’t watch TV, you’d still see a lot of advertisements as you walk in the street. Eyes have no time to rest in this modern life. In Baudrillardian sense we are losing the grips of ‘reality.’ Of course, there is no ‘moral’ reason why one should not enjoy this brilliant medium of photography and moving images. I only wish that the sacredness, of things/people before our eyes, were considered before yielding the printed/recorded. Now, I think, I should have told that boy in Cusco that he is not Picasso but Alejandro.


여행을 끝나고 돌아오면 가끔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바로 지금 그 곳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내가 만났던 사람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알 길은 없지만 궁금증 때문에 내 상상력은 자극을 받는다. 아마 이런 이유로 나는 나와의 관계가 두터운 사람들 말고는 인물 사진을 찍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기억이 나지 않을 때에는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지난 시간을 다시 한번 경험하게 되는 것이 즐겁기는 하나 그것은  때로는 너무 비도덕적이고 슬픈 일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이 사진을 찍었을 때에도 나는 그것이 마치 그들의 영혼이라도 빼앗는 것인 듯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졌다.
이 사진을 찍기 전에 벤치에 혼자 앉아 있는 나에게 한 소년이 다가왔다. 그림을 파는 소년이었다. 페루의 도시들 중에서도 쿠스코에서는 유독 미술관들이 많이 보였다. 물론 런던의 대영박물관이나 뉴욕의 현대 미술관 (MOMA) 같은 서구적인 미술관은 아니었지만 작고 옛스러운 장소에 유화와 스케치등이 빼곡하게 전시되고 있었다. 쿠스코에 하루 정도 있다 보면 그 중에서도 많이 보이는 진부한 그림이 바로 잃어버린 도시, 마추피추를 그린 그림이다.  그림을 그린 장소의 구도도 똑같아서 한 사람이 그려서 복사한 것일까 할 정도였다. 내가 직접 가보니 그 장소에서는 마추피추가 공중 도시여서 시야에 모두 들어오고 사진을 찍기에 딱 좋았다. 나에게 다가온 소년도 마추피추 그림들을 가지고 있었다. 도시 뒤에 있는 산맥이 옆으로 보면 옛 잉카의 추장이었을 법한 남자의 옆 모습으로도 보이는 활발한 색감의 그림을 가지고 나에게 온 아이는 내게 “나는 피카소에요” 라고 말했다. 나는 웃으면서 “아니야 내가 피카소야” 라고 받아쳤다. 그랬더니 “아녜요, 당신은 모나리자에요” 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설마 여성으로서 모델은 가능해도 화가는 불가능하다는 말은 아니겠지, 그런 의심이 들었지만 내 짧은 스페인어 실력으로는 더 이상 대화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사실 무엇을 파는 사람과는 대화를 길게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들은 시간이 남아서 놀러 나온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무엇인가를 팔아서 먹고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이 파는 물건을 살 수도 있을 거라는 기대를 주는 것은 좋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새 그림을 그리려고 캔버스에 젯소를 칠하다가 나는 불현듯 그 소년이 생각났다. 그리고 궁금해졌다. 지금 이 시간에도 그 소년은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그림을 팔러 다니고 있을까? 아니면 날이 저물어서 동네 친구들이랑 해적판 디비디라도 보고 있는 것일까? 내가 그곳으로부터 아득히 먼 이곳에서 그에 대해 궁금해 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는 못하겠지만 혹 책을 폈는데 거기에 모나리자가 웃으며 바라보고 있지는 않을까? 그러고 보니 마추피추에 다녀왔지만 그곳을 아직 그림으로 남기지 않았다. 그 때 너무 많은 그림들을 봐서 그런 것일까? 갑자기 온 지구인들이 다 아는 피카소나 모나리자처럼 흔한 것도 때로는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나도 한번 진부한 마추피추를 그려볼까?


기차는 검은 마을들을 지나친다
정신과는 밤에도 불을 밝혀둔다
눈은 자연스럽게 빛을 쫓는다
움직임에 배가 고프다
지나가는 것들이 내 머리위로도 스친다
비치는 것들이 내 머리위로도 비친다
그런데 내 눈은 어둠도 본다
흐릿히 보이는 사람들 몇명들을 떠올려 보다가 그랬다
나도 어둠속에서는 바라봐 진다
나는 상대적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