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_2011

춥지도 덥지도 않고 딱 적당한 온기가 느껴지는 3월 하순의 어느 날 나는 홍콩에서 비엔나로 날아갔다. 오스트리아의 수도인 비엔나는 나에게는 커다란 갤러리로 기억된다. 비엔나는 ‘음악의 도시’라는 명성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나는 거기에 ‘미술의 도시’라는 이름도 붙여주고 싶었다. 알고 지내는 언니 집에 머물렀는데 그 언니가 회사에 가 있는 동안 나는 혼자서 그 도시를 돌아다녔다. 낯선 도시를 종일 혼자 다녀도 외롭지 않았던 것은 그곳에는 많은 갤러리와 뮤지엄이 있었기 때문이다.

비엔나 하면 우선 소시지가 생각나고 가장 살기 좋은 도시 1위라고 어디서 읽은 것도 기억난다. 하이든, 모짜르트, 베토벤, 브람즈, 슈베르트, 쇤베르크, 말러등 고전 음악의 도시로도 알려져 있다. 노래와 왈츠로도 유명한 도나우 강이 있고 아름다운 쇤브룬 궁전도 있다. 하지만 웅장하고 드라마틱한 바로크 스타일의 건물들과 깨끗하고 반듯한 도시의 느낌만이 전부였다면 솔직히 비엔나는 나를 매혹시키기에 부족했을 것이다. 분리주의의 아르 누보적인 빌딜등도 나에게는 너무 ‘유기’적으로 보였다.

비엔나에서는 어디를 가도 보이는 갤러리들 때문에 인지 그저 건물안에 들어가서 유명한 그림을 한 두 개 보는 정도로 끝나는 것이 문화가 아니라는 것을 실감했다. 인간에게 밥 먹는 것 말고 문화라는 것이 얼마만큼 중요하며 필수적인가 하는 것을 깨닫는 날들이 이어졌다. 수많은 아티스트들의 에너지가 수많은 캔버스, 석재, 건물 등에 쏟아 부어졌다고 생각하니 바로크 스타일의 건물들이 단지 디자인만이 아닌 커다란 에너지의 수용소처럼 느껴졌다. 요즘 ‘창의 도시’라 하여 문화적 도시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하나의 유행이 되었다. 새로운 것을 만들고 여러 행사를 보여주는 것도 좋지만 오래된 것에서 나오는 힘과 에너지를 무시하지 않고 조금은 느리게, 또, 깊은 사유를 통해 도시를 차근차근 쌓아 올리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비엔나에서는 그런 일련의 연속이 느껴졌었다.

나는 걷고 또 걷고, 또 걸었다. 하루 종일 묵묵히 걸어다녔다. 내가 입을 열었던 것은 간혹 길을 물어보거나 커피 한 잔을 시킬 때가 전부였다. 그렇게 하루 종일 혼자 걷으면서 사람이 아닌 길거리와 건물들을 사진기에 담고 있으니 나는 꽉 찬 데이트를 하는 충만한 기분이었다. 언덕 길을 올라갈 때는 비가 왔다가 해가 나왔다를 반복했다. 나무들은 아직 잎이 없어 앙상했지만 주위에는 이른 꽃들이 피고 있어서 계절이 봄임을 입증해주었다. 벨베데레(Belvedere)에서 본 ‘봄’ 인가 ‘3월’ 인가 하는 그림이 생각났다. 꽃 대신 앙상한 나뭇가지로 쏟아지는 햇빛 줄기를 그린 작품이다.

벌써 3년이나 지난 지금도 기억나는 비엔나에서 본 그림이 또 하나 있다. 정확히 말하면 그림이라기 보다 화가이겠다. 에곤 쉴레는 수많은 그림책을 통해서는 이미 보았던 화가인데 그의 그림을 직접 본 것은 아마 그 때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던 나에게 그의 그림들은 내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지금도 분명히 기억하는 것은 그의 그림들을 이렇게 내 눈앞에서 하나 하나 자세히 보고 나면 다음에 내가 그림을 그릴 때 내 그림이 얼마나 초라해 보일까 하는 생각이었다. 구스타프 클림트는 그림의 주제에 초점을 둔 것 같았는데 그에 반해 에곤 쉴레의 그림들은 페인트의 감촉에 더 집중되어 있었다. 클림트가 붓의 털로 꽃(花)을 구사했다면 쉴레는 붓의 끄트머리 나무로 그늘(陰)을 표현하고 있는 듯 했다.

여러 미술관이 한 장소에 모여 있는 뮤제움 콰르티어(Museums Quartier) 에 있는 레오폴드 미술관(Leopold Museum)에서만도 하루 종일 쉴레나 클림트등 분리파 예술가들의 그림과 디자인등을 감상할 수 있었다. 그러나 빈 미술사 박물관 (Kunsthistorisches Museum) 에서도 풍부한 소장품들을 볼 수 있었다. 그곳에는 특히 내가 좋아하는 브뤼겔의 그림들이 아주 많이 있었다. 이런 큰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가면 좋아하는 것만 골라 보더라도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시간이 넉넉하다면 천천히 보는 것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꼭 보고 싶은 작품이 있을 경우 그 시대나 방을 테마로 잡아서 집중적으로 보는 게 좋을 것이다.

비엔나에서 내가 많은 갤러리와 미술관을 제대로 잘 볼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장소적 특성 때문이었다. 많은 갤러리와 뮤지엄들을 서로 가까운 위치에 두어서 방문하는 사람들을 편하게 해주었다. 물론 베토벤이나 모짜르트 기념관들 그리고 그 밖의 다른 박물관, 제체시온 (Secession: 분리) 건축들, 훈테르트 바서 하우스, 쉔부른 궁전, 혹은 하벨카와 같은 유명한 카페들을 가려면 지도를 들고 찾아 다녀야 하겠지만, 적어도 미술에 관련해서는 대체로 한곳에 모여있어서 짧은 일정의 방문자가 하루에 여기에도 가고 저기에도 가야 해서 생기는 피로감이나 작은 허탈감 없이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그렇게 돌아다니던 어느 날 나는 느긋하게 마음을 먹고 뮤제움 콰르티어에 있는 탄츠 콰르티어에 들어가서 현대 무용을 하나 보기로 했다. 어떤 특정 작품을 골랐다기보다는 시간이 맞는 날 하는 것을 보기로 했는데 후만 샤리피(Hooman Sharifi)의 작품이었다. 처음에는 4명의 무용수들이 각자 동물소리를 내기 시작하더니 그것이 점점 험한 소리로 커졌는데 귀를 아프게 할 정도로 쩌렁쩌렁한 것이 인간의 목소리의 힘이 손끝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그 후 관중 중 하나가 따라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고 차츰 모든 사람들이 다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어떤 종교의식 같은 분위기였다. 춤만 그런 것은 아닐 테지만 행동과 그에 따른 반작용이 잘 섞이면서 에너지를 공유하는 것이 평화스럽게 느껴졌다. 마지막에는 페르시아 양탄자를 뒤집어 쓰고 있다가 그것을 집어 던진 다음 옷을 벗고 누워 갓 태어난 아기마냥 노래를 부르면서 공연은 끝났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그 도시를 떠났다. 다른 도시들, 다른 나라들에 들렸다. 좋은 에너지를 공유한 사람들도 있었고 그러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다. 중요한 것은 내가 한 도시에 머무르는 동안 다음 도시로 갈 수 있는 만큼의 충분한 에너지를 받았다는 것이다.

내가 그 때 본 많은 그림들은 지금은 아주 잘 기억하지는 못하더라도 당시에는 개인적으로 나와 대화를 했음이 분명하다. 이렇게 지나가는 순간들과 경험들이 하나씩 쌓여 만들어가는 것이 우리 인생의 큰 부분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경험의 매 순간에 우리는 옷을 벗고 다시 한번 태어날 수 있는 것일지 모른다.

여행기_2011

여행할 때 보통은 그동안 가보고 싶어했던 곳을 선택해 가게 되지만 가끔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 가기도 한다. 가보고 싶었던 곳, 아니 꼭 가야만 하는 곳을 가는 경우에는 그 운명적인 장소와 지금이라는 시간이 만나기 때문에 더 이상 지도를 보지 않더라도 또한 호텔을 미리 예약 하지 않더라도 좋다. 어떤 끌림에 이끌려서 간 것인지라 무엇을 먹을까 이곳에서 얼마나 더 머무를 것인가 등을 굳이 생각하고 계획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하지만 간혹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 발이 떨어질 경우 그 곳에서는 무언가를 배워야 한다든지 혹은 어떤 유명한 곳을 찾아 가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슬로바키아의 브라티슬라바가 그런 곳 중의 하나였다.

사실 나는 오스트리아의 비엔나에서 한달 남짓 머물렀었고 거기서 프랑스로 넘어가는 일정이었다. 유럽은 알다시피 저렴한 항공권을 구매할 수 있는 방법이 많이 있지만 긴 여행을 계획한 터라 나는 더욱 저렴한 방법을 선택해야 했다. 그런데 저렴한 것을 선택한다는 것도 더 많은 다른 것을 보고 싶다는 욕구를 위한 핑계였을지 모른다. 아무튼 저렴한 비행기를 찾다 보니 비엔나보다는 브라티슬라바에서 빠리로 가는 비행기가 가격이 훨씬 저렴했고 비엔나에서 브라티슬라바까지는 강을 따라 배를 타고 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워낙 물을 좋아하기 때문에 프랑스에서 모로코에 갈 때는 비행기가 아닌 배를 선택한 적도 있었다.

아무런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은 데도 불구하고 이유 없이 끌리는 나라가 있다면 그와는 반대로 아무 이유 없이 끌리지 않는 나라도 있다. 사실 나는 동유럽 나라에는 끌리지 않는다. 체코, 헝가리, 루마니아 등 동유럽(그들 자신은 중앙 유럽이라고 설득력 있게 주장하는데) 나라에 많은 사람들이 가서 보고는 그곳들이 아름답다고 했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그 쪽에 끌리지 않았다.

슬로바키아는 이름은 멋있게 들렸다. 나는 소위 ‘남성적’ 소리와 ‘여성적’ 소리가 함께 섞여 있는 이름을 좋아한다. ‘슬로’ 처럼 처음에는 부드럽게 가다가 ‘키아’ 하고 강하게 나오는 이런 소리 말이다. 브라티슬라바 또한 그랬다. 그래서 비행기만 타러 다니지 말고 하루 정도를 머물기로 했다. 그리하여 4월 중순 어느날 나는 브라티슬라바에 도착했다.

비엔나에서 중형 배를 타고 브라티슬라바까지 가는 길은 참으로 독특하였다. 3면이 바다인 한반도에서 태어나서인지 강을 따라 가다 보면 다른 나라가 나온다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날씨는 비가 오다가 해가 비치고 구름이 끼기를 반복했다. 강가에는 많은 집들이 있었다. ‘그림 같은 집’이 여기 도나우 강 주변에도 있었다. 사실 집이라기 보다는 방갈로에 가까운 것이었지만 나에게도 하나만 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드니 그것은 나에게 집과 같이 보였다. 강을 따라가며 바라보는 자연은 반복되어도, 정렬을 이루어 서 있어도, 또는 거칠어도, 어떤 모습을 해도 자연스럽고 아름답다는 생각을 들게하였다. 결국에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자연에 들어있다는 것도 느꼈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숭고함에 빠져 있다 보니 어느새 슬로바키아에 도착 했다. 숙소를 찾아가는 택시안에서 잠깐 실랑이가 있었다. 말도 안되는 돈을 내라고 해서였다. 그리고 숙소에서 나와 허기진 배를 채우려고 식당에 들어갔는데 바깥에 써 붙인 메뉴의 가격과 안에 있는 메뉴의 가격의 차이가 두배나 되었다. 거스름돈도 주지 않아 달라고 해서야 무표정하게 거슬러 주었다.

그런데 여행 중에는 가끔 속아주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눈썰미도 있고 의심도 많아서 속지 않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사람이 많이 오지 않는 조용한 마을에서 이방인이 밥도 먹고 사진도 찍고 하니 일종의 ‘세금’ 같은 걸 내야 하지 않을까.

밥을 먹고 나자 ‘아직도 비가 오는데 나는 여기에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보고 싶은 사람들도 생각났고, 떠나온 사람들도 생각났다. 또한 앞으로 만날 사람들은 누굴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밖으로 나갔다.

브라티슬라바는 그리 크지 않았다. 비가 오는데 구시가지의 이곳 저곳을 걸어 다녔다. 대성당들도 보였고 성도 보였다. 비 때문인지 몇몇 영국인 관광객들을 제외하고는 사람들이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길가다가 성당에서 들려오는 미사곡들 말고는 조용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어떤 갤러리가 있길래 들어갔는데 거기에는 큰 판화가 하나 있었고 ‘CHA Cha …’라고 써있었다. 예전에 친구들이 내 이름을 줄여서 ‘차’라고 불렀는데 그냥  ‘차’라고 부르지 않고 ‘차 차’라고 불렀던 게 생각났다. 그 생각 때문인지 역시 여행은 친구와 같이 해야 해 라고 생각하면서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는 강가에 있었다. 강이 보이는 호텔이 아니라 강위에 있는 호텔이었다. 보텔이라고 부르는데 보트와 호텔을 합친 것인 듯 했다. 침대, 티비, 라디오, 샤워가 다 있어서 하루를 푹 쉬기에 완벽했다. 가장 마음에 든 것은 꼭 보트가 움직이는 것처럼 느끼게 해주는 커다란 창문이었다. 때마침 해가 지고 있는 석양을 한동안 바라보고 있는데 뭉클한 마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혼자 있으면 하게 되는 생각들이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럴 때 더 이상 운명, 우연, 신의 존재 여부, 도덕, 미학 등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는다. 이미 나만의 생의 철학을 나름 단단히 구축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나에게는 그 모든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사람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생명, 삶, 사람 이야기야 말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주제가 아닐까. 그런데 누가 전능으로 세상살이를 말 할 수 있을까. 창 밖으로는 물이 흐르는데 해는 움직이지 않으니까 이상했다. 그래서 정말 내가 쉬고 있구나 라고 느꼈다. 원래 보트 위에 있다면 어디론가 움직여 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샤워를 할 때 배가 한번 아주 심하게 흔들렸다. 순식간에 내 발바닥이 버티고 있는 바닥이 벽으로 바뀔 기세였다.

다음날 비행기를 타기 전에 시간이 있어서 유명하다는 현대 미술관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전날 밤 잠잤던 ‘보트’를 타고 바로 갔으면 좋았으련만 다시 가방을 챙기고 시내 버스를 타러 나갔다. 다누비아나(Danubiana)는 시내에서 먼 곳에 있었다. 먼저 Cunovo라는 마을까지는 버스를 타고 갔다. 황량한 평지를 지나 작은 일반통행 길 어딘가에서 내렸다. 마을   사람들에게 간신히 길을 묻고 갤러리가 있는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는데 날씨가 나에게 깊은 인상이라도 남기려는 것인지 난리법석이였다. 해가 쨍쨍하다가도 아주 거센 바람이 불고 또 비가 오기를 반복했다. 헬리콥터 소리를 내는 바람 때문에 제대로 걷기도 힘들었고 온 몸이 매맞는 듯 아플 정도였다. 그리고는 아주 긴 고속도로를 지나서야 겨우 목적지에 도착했다.

http://www.danubiana.sk/eng/index.html

그렇게 힘들게 찾아온 곳이건만 그곳에서는 고작 현대 미술 작품 몇 개의 전시가 전부였다. 나름 미술사를 공부했기 때문이었을까, 방금 경험한 것이 미술사 그대로를 말해주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정말 고되게 힘들게 그러나 씩씩하고 용감하게 바뀌면서 더 좋아졌다가 더 나빠지기도 하기를 반복한 후에 만들어진 현대 미술은 나의 그런 생각과는 상관 없다는 듯 차가웠다. 하지만 이것 또한 하나의 언어임은 분명했다.

날씨도 차가웠고 사람들도 차가워 보였던 브라티슬라바에서의 하루였다. 그 이유는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이 말한 것처럼 슬로바키아가 외국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외국인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여행기_2011

모로코 대중 교통

유럽이나 미국, 그밖의 선진 국가의 국민이 모로코로 여행을 갈 경우 현지에서 보통은 렌트카를 이용하는 편이다. 모로코라는 나라가 가지고 있는 다양성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자동차가 가장 편리하기 때문이다. 아틀라스 산맥, 대서양과 지중해, 사하라 사막 그리고 그 사이 사이에 있는 페즈와 같은 여러 도시들을 보려면 자동차로 여행하는 것이 유리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시간의 여유가 있고 단체여행이 아니라 혼자 혹은 둘이 여행을 하는 경우 자동차보다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이유는 교통비가 저렴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여행하는 나라에 우리가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버스를 타면 그 나라의 보통사람들의 모습을 더 잘 관찰할 수 있고 택시를 타면 기사와 이런저런 일상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모로코에는 기차는ONCF라는 국영철도가 하나 있는데 노선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즐거운 여행을 값싸게 할 수 있게 해준다. 예를 들어 수도 라밧에서 모로코 동쪽 끝의 알제리아 옆에 있는 우즈다까지는 침대가 있는 밤기차로 열시간 정도 걸리며 기차값은 우리 돈으로 4-5만원 정도이다. 또 카사블랑카에서 마라케쉬까지 일등석으로 타더라도 2만원이 안 들고 3시간 정도 걸린다. 탕헤르에서 페즈까지 이등석을 타면 1만 5천원 미만에 5시간 정도 걸린다. 개인적으로 나는 짧은 거리일 때 기차를 더 편하게 이용했다. 예를 들어서 카사블랑카에서 라밧 처럼 멀지 않은 거리는 기차와 버스 값에 차이가 없을 뿐만 아니라 기차 시간을 미리 알아보지 않아도 되니 편리했다. 기차에는 짐을 가득 실은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있었지만 아이들도 많았다. 핸드폰에 저장해 둔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듣거나 기차 문을 열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서 담배를 피우는 아이들도 있었다.

출발시간이 비교적 정확한 기차와는 달리 시외버스는 따로 버스 시간표가 없는 편이다. 시간표가 있더라도 그냥 가서 커피 한 두잔 정도 마시고 타면 된다. 나는 모로코를 여행할 때 버스를 가장 자주 이용했는데 한번도 내가 알고 있는 시간에 버스가 출발한 적이 없다. 그냥 버스에 인원이 꽉 차면 떠나는 것이다. 그리고 버스는 100% 꽉 찬다.

버스표를 사는 일도 재미있는데 버스 정류장 (gare routier) 에 들어가면 여러 남자들이 큰소리로 말하는 것을 듣게 된다. 한쪽에서는 카사블랑카 티켓을 판매하는 남자가 “Casa, casa, casa” 를 외치고, 그 옆에서는 탕헤르 티켓을 판매하는 또 다른 사람이“Tange tanger tanger” 라고 외친다. 그걸 보면서 나도 티켓 파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그것은 활기차고 독특한 풍경이었다.

간혹 관광객을 보면 천원, 이천원 정도 올려 팔기도 하는데, 나는 미리 현지인들에게 가격을 물어보고 들어갔었기 때문에 속아 넘어가지 않았다. 그리고 들어가자마자 그들이 영어나 불어로 말을 걸더라도 “앗쌀람 알레이쿰”이라고 말한 다음 보기에 가장 순수(?)하거나 정직해 보이는 청년에게 가서 티켓을 사면 속을 일은 없을 것이다.

표를 산 후 버스를 타면 물건을 파는 사람들이 하나 둘 들어온다. 금(?!) 목걸이, 팔찌, 시계, 선글라스, 양말, 과자, 음료, 휴지 등 정말 다양한 물건들을 팔러 들어왔다가 버스가 떠나면 그때서야 뛰어내린다. 물건을 팔러 들어온 사람들이 나가고 한 두시간 정도 늦어버린 여행객이 헐떡거리면서 버스에 뛰어 올라타면 그때서야 버스는 떠난다.

나는 모로코를 여행할 때 하도 현지인 흉내(?!)를 많이 내 오죽하면 그곳 사람들이 나보고 베르베르 사람이냐고 묻기도 했고 그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다. 베르베르족은 산에 사는 한 부족인데 언어도 다르며 훌륭한 상인으로 또한 인색하기로도 유명하다.  어떤 나라를 가나 느끼는 것이지만 새로운 환경이나 경험에 재치있게 대처하고 그 나라 사람을 존중심을 가지고 대하면 그들의 다른 점으로 겪게 되는 경험은 늘 재미있는 사건과 추억으로 남게 된다.

나는 모로코에서 한번도 벽 시계가 제대로 돌아가는 집을 본적이 없다. 과장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왜냐하면 언젠가부터 유심히 시계를 찾아보게 되었는데, 한번도 시계 바늘이 멈춰있지 않은 시계나 정확한 시간을 가리키고 있는 시계를 보지 못했다. 어쩌면 시계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그곳에서 하루를 나누고 있는 것은 시계바늘이 아니라 사람들이 어디에 있건 멀리서나 가까이서 들려오는 모스크의 기도 시간을 알리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그것 말고는 그들은 시간을 굳이 나눌 이유도 없을 지 모른다.

모로코에 가기 전에 읽은 책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서양 여자가 모로코에 잠깐 머물렀었는데 하루는 옆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아! 지금 몇시예요? 약속이 있는데” 라고 말하자 옆 사람이 “여섯시예요. 약속시간이 언젠데요?” 라고 물었다. 여자가 “어머, 약속시간이 다섯시인데, 어떡해요, 늦었어요!” 라며 놀라자 옆 사람이 다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 그렇다면 지금은 네시 반 밖에 안되었어요. 지금 가면 되겠어요.” 좀 과장이 섞이기는 했겠지만 현지에 가보니 정말 실감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우체국 같은 곳을 가보면 볼 일이 있어 들어온 사람들이 꽉 차있는데도 그리고 점심시간이 끝난 지 한참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우체국 직원이 아무도 오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또 누구에게 나 늦었다 라고 말하면, 괜찮아, 괜찮아, 문제없어 라고 말했다. 사실 이런 일들은 살다 보면 분명 짜증스러울 때가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정신을 차릴 수 없게 너무나도 빨리 돌아가는 한국에 있다 가서 더 그렇게 느낀 것일까, 여행자로서는 이런 편안함, 여유로움, 느림이 그 어떤 물질적 성취의 의미를 훨씬 뛰어넘는 소중한 것으로 느껴졌다. 그런 것은 분명 우리가 잃어버린 중요한 부분이며 우리 삶의 물질화, 기계화가 가속화하면 할수록 앞으로 반드시 회복해 나가려고 노력해야 할 정신의 영역인 듯 했다. 이상한 것은 이런 곳에서 지내다 보니 나만의 시간도 훨씬 많아지고 하루도 훨씬 더 긴 듯했다. 마치 하루가 길고 길었던 유년시절로 내가 돌아가 있는 듯 했다.

모로코에는 택시가 두 종류이다. 하나는 타자마자 떠나지만 하나는 손님들이 꽉 차야 떠난다. 바로 그랑 택시와 쁘띠 택시가 그것인데 그랑 택시는 먼 외곽으로 장거리를 가는 택시이고 쁘띠 택시는 시내에서 움직이는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택시이다. 다른 점은 쁘띠 택시는 가끔 합승을 하기는 해도 원칙적으로는 개인이 타는 것이고 그랑 택시는 여러 사람이 합승하는 택시라는 점이다. 최대 6인까지 합승하는데 운전석의 운전사 옆에 2명이 타고  뒤에 4명이 탄다. 보통 한 도시의 외곽에는 꼭 그랑 택시가 모여있는 승차장이 있고 택시는 사람이 꽉 차면 그때 떠난다. 그런데 모로코는 이상하게도 남자들은 거의 다 말라 있고 여자들은 거의 다 퉁퉁하다. 한번은 짐이 많은 아줌마와 동석했는데 난 거의 엉덩이를 들고 한쪽 팔은 뒤로 뻗어 옆 사람과 어깨동무라도 하듯 하고 몸은 가슴쪽으로 잔뜩 움추려 모으고 가야만 했다.

그랑 택시

그랑 택시의 장점은 뭐니뭐니해도 가격이다. 천원, 이천원만 내면 꽤 먼 시외까지 갈 수 있다. 카사블랑카에서 라밧까지 오천원 정도면 된다. 하지만 내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차종이다. 그 전까지 차는 뭐 다 거기서 거기지 했지만 그랑 택시를 본 후에는 꼭 그런 차를 구입하고 싶었다. 빈티지 모델이라서 구입하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언젠가 나도 그랑택시를 한대 몰고 다닐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쁘띠 택시가 도시마다 색이 다르다는 점이다. 라밧에서는 파랑색이고, 페즈에서는 빨간색이며, 태투안에서는 노란색 이다. 버스를 타고 여행하다 보면 어떤 도시를 지나쳐 다음 도시로 갈 때가 있는데 나는 그때마다 창 너머로 택시의 색깔을 보고 “여기는 하얀색이군” 혹은 “아니 노란색이라니!” 라며 혼자 중얼거렸다.

쁘띠 택시들은 대부분 요금기를 갖추고 있지만 간혹 기계가 작동하지 않거나 요금기가 아예 없는 택시도 있다. 그럴 때는 값을 미리 물어보면 된다. 택시 기사들은 한번도 택시 값을 더 부른 적은 없다. 어쩌면 동양인을 배려하는 마음에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내 경험에 의하면 그들은  외국인이라고 거짓말을 쉽게 하는 사람들은 아니다. 이상하게도 모로코에는 도둑이 많다고 하고 소매치기도 많다 하지만 비교적 젊은 여성인데도 나는 그런 것을 경험해 본 적이 없다. 내가 타인을 좋게 보면 그들도 나를 좋게 본다는 말이 맞는 듯 하다. 하지만 혹시 택시 안에서 요금을 너무 많이 부르는 것 같다 싶으면 “Ma’ eindish leflouss” (돈이 없어요!) 라고 외쳐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러면 분명히 처음에는 다툼이 있겠지만 바로 좋게 끝나는 특별한 경험을 할지도 모른다.

여행기_2011

여행과 시간

 

프랑스 마르세유 근방에 있는 바닷가 절벽 마을에서 쓴 시다. 배를 타고 나가면 기름에 떠있는 듯한 부드러운 파도 때문에 마치 내가 양탄자를 타고 날아다니는 기분이었다. 수영이 몹시 하고 싶었지만 바다 수영을 하기에는 내 수영 실력이 모자랐다. 모두 수영복을 입고 배를 탔기에 친구들은 바다에 들어가 춥다고 소리치면서도 수영을 했다. 그들이 수영해서 절벽 아래 있는 동굴로 가 그 속에 들어갔다 나오면서 너무 좋다고 외칠 때 나는 많이 부러웠지만 그저 배 위에서 그들의 사진을 찍어주면서 ‘타인의 행복’을 내 행복으로 여기는 부차적 행복에 만족해야 했다.

사실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지 않았다면 나는 돌아버렸을지도 모른다. 프랑스인들, 아니 ‘빠리지앵’들, 아니 예술가들의 변태적이며 자기파괴적인 행동과 말 때문에 나는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고 화도 나도 슬프기도 했었다. 프랑스어로 ‘ennui’ 라고 하는 ‘권태’는 나도 잘 안다고 믿었지만, 이들의 복잡한 개인사 그리고 거기에 뭐든 더 얹어 복잡하게 만들려고 하는 그들의 행태가 내 마음을 지치게 하고 지루하게 만들었었다. 하도 재미가 없어서 어서 이곳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만 했었다. 그들은 이런 아름다운 자연 그리고 아름다운 건축물 등을 가질 자격도 없는 사람들이라는 극단적인 생각도 했으며, 그들은 웃는 것조차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배를 타고 나가자 끊임없이 이어지는 ‘선’ 을 보면서 이것이 인간이 갈망하는 그리고 또한 두려워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먼저 가졌던 감정에  대한 치유가 되었다. 나는 내 앞에 불행과 아픔을 보는 것을 유난히 힘들어한다. 어쩌면 내 친구들이 가지고 있던 부정적인 면들을 보듬어줌으로써 내가 그들의 상태를 나아지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것을 힘들어 하는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의 바램과 욕구가 크면 클수록 그리고 우리의 철학이랄까 세계관이 크면 클수록 어쩌면 두려움도 슬픔도 더 커질 수 있을 지 모른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모든 것을 무의미한 것으로 놓아버리고 따분해지면서 세상살이를 비관적으로 볼 수 밖에 없게 될지 모른다.

나는 친구한테 계속 ’J’ai les cafards’ 라고 말했다. ‘Le cafard’는 ‘바퀴벌레’다. ‘Avoir le cafard’(‘바퀴벌레를 갖다’) 는 ‘우울하다’는 뜻의 프랑스어 숙어인데, 마침 내 기분을 잘 표현해주는 듯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cafard는 ‘바퀴벌레’이기 전에 아랍어에서 유래된 ‘비신도’라는 뜻도 있다. 인간은 어떤 것이든 믿음을 하나쯤은 가지고 있어야 하는 나약한 존재라는 걸 새삼스럽게 깨닫게 해주는 말이었다.

본질적으로 들어가면 믿음이라는 것은 결국 생존과 매우 가깝다. 믿음이 생기면 욕구도 생긴다. 무엇을 하고 싶다, 무엇을 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을 해야겠다. 절벽 아래 있는 동굴은 밖에서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다. 하지만 그곳에 들어갈 수 있으며 들어갔다가 다시   나올 수 있다고 믿었기에 친구들은 과감하게 그곳에 들어갔을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 무엇이 있을까 하는 궁금증도 그런 ‘용기’를 주는데 한 몫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혹 그들은 다시 나올 수 있을까 하는 문제는 염두에 두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서 우리는 간혹 다시 나올 수 없는 어둠을 향해 나중을 생각하지 않고 두려움 없이 저벅저벅 들어가 기도 하는 것이 아닐까? 많은 공포영화의 주인공들이 바로 그런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옆집에 살고 있는 어부가 우리가 빠리에서 놀러왔다는 소식을 듣고 아침에 잡은 고등어를 선물로 주었다. 회를 해먹으려고 다들 여러 양념들을 챙기고 올리브유를 꺼내고 포크와 나이프로 여기저기 칼집을 냈다. 맛있게 먹고 싶다는 욕망이겠다. 우리는 점심으로 고등어 회를 먹고 일광욕을 즐기면서 책을 읽었다. 나는 그러다가 맨 앞에 적은 ‘시’를 썼는데, 친구들은 ‘쟤가 벌써 프랑스어로 시를 썼어’라며 웃었다.

‘믿음’이라는 단어는 ‘사랑’이라는 단어만큼이나 너무나도 큰 것이어서 왠지 거기에 대해서는 100퍼센트의 확신이 있어야 할 것 같다. 그렇다면 그것은 모든 것을 흑과 백으로 나눠버린 언어적인 이해가 아닐까.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는 지금도 제사를 지내고 굿을 하는데 그렇다고 그들이 무교거나 혹은 유교라는 종교적 신앙심을 확신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어가  쉬워서 시를 쓴 것은 아니다. 지금도 프랑스 사람 앞에서는 일부러라도 한 마디도 하지 못한다. 그런데 프랑스에서, 프랑스 친구들 사이에서 3,4주를 지내고 그 시간을 돌이켜 볼 때  시가 나온 것은 시기적으로 자연스러운 것이었다고 믿는다. 그것은 생존하는데 필요했던 것을 깨달았을 때 나오는 자발적인 행위였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힘들다. 고로 창작한다’ 인 것이다.

계획을 세우고 모든 것을 논리적으로 따져보는 것은 삶을 ‘이롭게’ 사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연적으로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것을 아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마다 모두 다른 환경에서 살기 때문에 모두가 이렇게 저렇게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으며 또한 불공평하다. 쉽고 단순하며 옳고 공평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자연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을 끄집어 내는 것이다. 그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현대사회는 우리에게 점점 자연적인 것에서 멀리 떠나게 하고 자연상태를 잊으라고 하지만 그럴수록 자연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우리 개개인이 스스로 해야 할 숙제이다.

프랑스를 떠나는 날 쎄뜨에 있는 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한 여자가 알 수 없는 말을 하고 이상한 몸짓을 하며 풀어헤친 머리칼을 휘날리면서 카페로 들어왔다가 나갔다를 반복했다. 바텐더가 나에게 ‘봐봐 저 미친 여자’라고 했다. 나는 되물었다. ‘누구는 안 그런가요?’ 사람들은 잊은 듯 하다. 인간은 아니 모든 생명은 그리고 더 나아가 우주는 사실 아주 미친 곳이라는 것을. 우리는 보통과 다른 것을 미쳤다고 표현하지만 사실은 보통이라는 것은 진짜 모습을 감추려는 인간의 헛된 허망한 몸짓의 하나가 아닐까.

나는 한 나라안에서도 어떤 도시에는 비가 오고 어떤 도시는 기온이 영도로 떨어지고 또 다른 도시에서는 거의 섭씨 30도에 육박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물론 같은 시간대에서 말이다. 프랑스에 있을 때 한번은 자기 전에 내가 한 친구에게 공간보다 시간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랬더니 나이가 꽤 많은 그 친구가 과거에 자신이 저질렀던 모든 실수는 그걸 몰라서 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 가운데 많은 것이 자신의 의지로 바꿀 수 없는 것들이다. 지구는 돌고 있고 무수한 생명이 움직이며 살아있다. 그런데 그것을 유심히 관찰하다 보면 무슨 일이 왜 일어나는지에 대한 답이 나올 때가 있다. 그것을 일러 ‘타이밍’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너무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않고 나조차도 제 3자 입장에서 바라보다 보면 결국 사는 것은 자연의 일부가 되는 일이다. 물리적인 공간은 우리가 쉽게 바꿀 수 없다. 공간이 주는 좋은 점과 나쁜 점은 그냥 담담히 받아들이게 된다. 하지만 혹 바꿀 수가 있다고 해도 결국에는 제자리 걸음일 때가 많다. 각자 안에 들어 있는 마음이 쉽게 바뀌지 않고 기억 속에 자리잡고 있는 버릇도 쉽게 고쳐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시간’은 제어할 수 있다. 쉬운 예를 들면, 오늘은 이것을 하고 그래서 뒤따라오는 일들인 저것은 내일 한다 라고 정하는 것이다.

내가 프랑스에 간 일차적인 이유는 그곳에 친구가 있기 때문이었다. 한 달 동안 그 친구 집에서 지내면서 함께 시간을 보내려는 생각이었다. 내가 프랑스에 도착하자 그 친구에게 어떤 개인적인 일이 있었는데 내가 온 것이 기막힌(!) ‘타이밍’이 되었다. 나의 개인적 ‘최종 목적지’는 모로코였는데 프랑스는 모로코를 가기 위한 관문이었다. 프랑스에서 나는 프랑스어로 많이 말하지는 않았지만 한달 동안 내 귀는 열심히 프랑스어를 들었는데 그것이 내가 모로코에 갔을 때 도움이 되었다. 모로코에서 영어를 못하는 사람을 만나도 또 내가 아랍어를 잘 하지 못해도 자연스럽게 소통하면서 지낼 수 있었던 것이다.

‘여행을 떠난다’고 할 때 우리는 보통 공간을 더 생각하게 된다. 어디에서 어디로 이동하는 것이 여행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시 잘 생각해보면 시간의 중요성이 공간의 중요성만큼 혹은 그보다 더 크다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우리는 여행을 갈 때 ‘어디’에 대해 알려고 하는데 그러기 전에 왜 우리는 그곳에 가려고 하는지 그 이유 혹은 계기와 또한 ‘지금’이라는 혹은 ‘한 달 후’라는 시간적 개념을 조금 더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여행기_2014

여행을 끝나고 돌아오면 가끔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바로 지금 그 곳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내가 만났던 사람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알 길은 없지만 궁금증 때문에 내 상상력은 자극을 받는다. 아마 이런 이유로 나는 나와의 관계가 두터운 사람들 말고는 인물 사진을 찍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기억이 나지 않을 때에는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지난 시간을 다시 한번 경험하게 되는 것이 즐겁기는 하나 그것은  때로는 너무 비도덕적이고 슬픈 일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이 사진을 찍었을 때에도 나는 그것이 마치 그들의 영혼이라도 빼앗는 것인 듯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졌다.
이 사진을 찍기 전에 벤치에 혼자 앉아 있는 나에게 한 소년이 다가왔다. 그림을 파는 소년이었다. 페루의 도시들 중에서도 쿠스코에서는 유독 미술관들이 많이 보였다. 물론 런던의 대영박물관이나 뉴욕의 현대 미술관 (MOMA) 같은 서구적인 미술관은 아니었지만 작고 옛스러운 장소에 유화와 스케치등이 빼곡하게 전시되고 있었다. 쿠스코에 하루 정도 있다 보면 그 중에서도 많이 보이는 진부한 그림이 바로 잃어버린 도시, 마추피추를 그린 그림이다.  그림을 그린 장소의 구도도 똑같아서 한 사람이 그려서 복사한 것일까 할 정도였다. 내가 직접 가보니 그 장소에서는 마추피추가 공중 도시여서 시야에 모두 들어오고 사진을 찍기에 딱 좋았다. 나에게 다가온 소년도 마추피추 그림들을 가지고 있었다. 도시 뒤에 있는 산맥이 옆으로 보면 옛 잉카의 추장이었을 법한 남자의 옆 모습으로도 보이는 활발한 색감의 그림을 가지고 나에게 온 아이는 내게 “나는 피카소에요” 라고 말했다. 나는 웃으면서 “아니야 내가 피카소야” 라고 받아쳤다. 그랬더니 “아녜요, 당신은 모나리자에요” 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설마 여성으로서 모델은 가능해도 화가는 불가능하다는 말은 아니겠지, 그런 의심이 들었지만 내 짧은 스페인어 실력으로는 더 이상 대화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사실 무엇을 파는 사람과는 대화를 길게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들은 시간이 남아서 놀러 나온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무엇인가를 팔아서 먹고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이 파는 물건을 살 수도 있을 거라는 기대를 주는 것은 좋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새 그림을 그리려고 캔버스에 젯소를 칠하다가 나는 불현듯 그 소년이 생각났다. 그리고 궁금해졌다. 지금 이 시간에도 그 소년은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그림을 팔러 다니고 있을까? 아니면 날이 저물어서 동네 친구들이랑 해적판 디비디라도 보고 있는 것일까? 내가 그곳으로부터 아득히 먼 이곳에서 그에 대해 궁금해 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는 못하겠지만 혹 책을 폈는데 거기에 모나리자가 웃으며 바라보고 있지는 않을까? 그러고 보니 마추피추에 다녀왔지만 그곳을 아직 그림으로 남기지 않았다. 그 때 너무 많은 그림들을 봐서 그런 것일까? 갑자기 온 지구인들이 다 아는 피카소나 모나리자처럼 흔한 것도 때로는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나도 한번 진부한 마추피추를 그려볼까?

여행기_2014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쿠스코 (Cuzco)를 향해 가는 동안 나는 내내 창 밖을 내다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피곤한 여정에 옆에서 눈을 반쯤 감고 있는 친구에게 “Is this Andes? This is THE Andes! Look, the Andes!” 라는 말을 계속하며 내 눈은 눈 아래 펼쳐져 있는 풍경을 떠나지 못했다. 안데스산맥을 페루 쪽에서 맨 먼저 볼 줄은 몰랐다. 내가 남미에서 가장 가보고 싶었던 나라인 아르헨티나나 베네수엘라에서 처음으로 보게 될 줄 알았다. 그래서 함께 환호하지는 않더라도 옆에 있는 친구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생겼다.

2012년에 페루에 갔던 것은 내 생애 처음으로 타인의 결의로 이루어진 여행 이었다. 내가 시작한 장(章)이 아니었다. 그래서 일까, 처음에는 좋은 여행지에서는 꼭 느끼게되는 ‘모든 것이 톱니바퀴 맞물려  돌아가는듯’ 한 것을 체험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중에는 두 가지 혹은 그 이상이 융합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며 결과적인 감동보다는 그 과정에 배울 것이 많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함께 간 친구는 고등학교 동창인데 그 시절 이후 지금까지 서로 많이 아껴주면서 지내왔다. 지금은 서로 다른 나라에 떨어져 살고 있지만 한 때 나는 아무에게도 연락 하지 않고 지낼 때에도 이 친구에게 만은 연락하면서 지냈을 정도로 친했다. 지금 나는 손에 붓을 드는 일을 하고 있고 이 친구는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금융 일을 한다.

여행을 어디로 가던 내가 좋아하는 기분이 몇 개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아마 ‘다르다’는 느낌 후에 다가오는 ‘같다’는 느낌일 것이다. 누구나 어디를 갔을 때 이런 느낌을 받은 적이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다르고 낯설게 보이지만 머잖아 다르게 보였던 것은 작은 세부사항들이었을 뿐이며 크게 보면 지구라는 곳에 선으로 그어 놓은 듯이 나뉘어 있는 나라들은 결국 다 같다는 걸 알게 된다.

식습관, 종교, 의식, 건축, 정치 방식, 언어, 피부 색 등이 다 다른 듯이 보이지만 겉으로 나타나는 것만이 그렇다. 사람살이의 본질로 들어가 보면 눈물, 식욕, 가족, 사랑, 돈, 거주 방식 등에서 우리는 거의 다 같다. 우리가 무엇인가에 다가가는 방향은 다르나 그 무엇은 같은 것이다.

친구는 여행지에서 풍경 사진을 많이 찍었다. 거의 언제나 눈에 사진기를 대고 있을 정도였다. 내 사진기는 몇 장면을 찍을 때를 제외하고는 항상 가방 안에 있었다. 우리는 먹을 것 앞에서도 많이 달랐다. 친구는 한 반년 전부터 채식주의자로 살기 시작했기 때문에 고기나 생선만 파는 식당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가끔 당근, 양파, 가지 등이 그득한 친구의 접시를 보다가 시뻘건 고기 덩어리를 썰고 있는 나를 보면 괜히 죄책감이 들기 까지 했다.

우리는 다른 점이 보이면 먼저 경계부터 한다. 나도 페루에서 내가 사랑한다고 생각했던 친구가 나랑 너무나 다르게 행동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과 너무나 다른 것을 좋아하는 것을 보고 경계했다. 이런 감정이 길어지면 실망하고 그러다가 반감으로 이어진다. 나는 10년 넘게 알고 지낸 친구에게서도 이런 감정을 느꼈는데, 하물며 처음보는 무엇 또는 누구에게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은 훨씬 더 가능할 것이다. 이런 내 감정이 수그러들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이 문제에 대해서 대화를 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의 오래고 깊은 우정이 바닥에 깔려 있었기 때문에 대화를 해야겠다는 용기와 더불어 서로에 대한 이해심도 생겼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대화는 모든 ‘다름’ 을 이해하고 존중해 줄 수 있는 길로 가는 첫 걸음이 아닐까. 물론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외국인들은 통역을 사이에 두고 대화한다. 엄마와 갓난아기는 아기의 울음소리, 엄마의 지혜 그리고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통해서 서로를 알아가게 된다. 부부 사이는 언성을 높이기도 하고 말을 아예 하지 않기도 하고 가끔은 창문을 깨뜨리거나 눈물을 흘리기도 하면서 서로를 알아가려고 한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상대방에게 얼마나 마음을 쓰고 있느냐 그리고 서로를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느냐 그리고 서로가 서로를 얼마나 필요로 하느냐 하는 것이다. 상대방을 소중하게 여기는 순간 다른 점을 인정하게 되고 서로가 필요한 점이 둘 사이를 대화하게 만드는 것이다.

나중에 친구에게 찍은 많은 사진들을 보여 달라고 했다. 친구의 디지털 사진기 안에는 우리가 함께 걸었던 곳 들, 내 뒷모습, 내가 웃기는 표정으로 빨리 오라고 손짓하는 모습 등이 담겨 있었다. 어쩌면 직장이라는 틀 안에서 바쁘게 사는 친구에게 그 사진기는 지금이 결코 꿈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것을 증명해 주는 하나의 도구 일지도 모른다. 사진을 보고 친구의 입장을 이해하면서 우리가 함께 하는 여행을 함으로써 처음 와보는 오지에서 배우는 것 못지 않게 서로에 대해서 많은 걸 배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 나에게 필요한 사람, 소중하고 중요한 사람, 자신 보다도 더 마음을 쓰게 되는 사람이 있다면 지금 그런 사람과 함께 여행을 한번 떠나보라고 권하고 싶다.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 서로의 다른 점을 보고 이해하고 존중해주는 시간을 갖는 것은 우리의 삶에서 큰 의미를 만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뜨거운 물” 마추픽추에서 2012

곧게 뻗은 바위는 엊그제 죽은 내 사랑

길쭉히 자라난 산 너머 저 나무는 내 이루지 못한 사랑

그 사이에 가는 빛줄기는 내가 쉬고 있는 숨

자연스럽게 지나가버린

결코, 자연스럽지 못한 사랑 이야기

사람 이야기

가끔은 해가 비추는 언덕 사이로 비가 오기도 하지

나는 그때를 기다려

두 손 내밀어 비를 느끼고

잠에 들고

그 언제가 꿨던 꿈

한번 더 꿔보기도 하고

(차, Aguas Calientes 페루에서 어느 비 많이 오던 날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