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_2011

여행할 때 보통은 그동안 가보고 싶어했던 곳을 선택해 가게 되지만 가끔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 가기도 한다. 가보고 싶었던 곳, 아니 꼭 가야만 하는 곳을 가는 경우에는 그 운명적인 장소와 지금이라는 시간이 만나기 때문에 더 이상 지도를 보지 않더라도 또한 호텔을 미리 예약 하지 않더라도 좋다. 어떤 끌림에 이끌려서 간 것인지라 무엇을 먹을까 이곳에서 얼마나 더 머무를 것인가 등을 굳이 생각하고 계획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하지만 간혹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 발이 떨어질 경우 그 곳에서는 무언가를 배워야 한다든지 혹은 어떤 유명한 곳을 찾아 가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슬로바키아의 브라티슬라바가 그런 곳 중의 하나였다.

사실 나는 오스트리아의 비엔나에서 한달 남짓 머물렀었고 거기서 프랑스로 넘어가는 일정이었다. 유럽은 알다시피 저렴한 항공권을 구매할 수 있는 방법이 많이 있지만 긴 여행을 계획한 터라 나는 더욱 저렴한 방법을 선택해야 했다. 그런데 저렴한 것을 선택한다는 것도 더 많은 다른 것을 보고 싶다는 욕구를 위한 핑계였을지 모른다. 아무튼 저렴한 비행기를 찾다 보니 비엔나보다는 브라티슬라바에서 빠리로 가는 비행기가 가격이 훨씬 저렴했고 비엔나에서 브라티슬라바까지는 강을 따라 배를 타고 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워낙 물을 좋아하기 때문에 프랑스에서 모로코에 갈 때는 비행기가 아닌 배를 선택한 적도 있었다.

아무런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은 데도 불구하고 이유 없이 끌리는 나라가 있다면 그와는 반대로 아무 이유 없이 끌리지 않는 나라도 있다. 사실 나는 동유럽 나라에는 끌리지 않는다. 체코, 헝가리, 루마니아 등 동유럽(그들 자신은 중앙 유럽이라고 설득력 있게 주장하는데) 나라에 많은 사람들이 가서 보고는 그곳들이 아름답다고 했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그 쪽에 끌리지 않았다.

슬로바키아는 이름은 멋있게 들렸다. 나는 소위 ‘남성적’ 소리와 ‘여성적’ 소리가 함께 섞여 있는 이름을 좋아한다. ‘슬로’ 처럼 처음에는 부드럽게 가다가 ‘키아’ 하고 강하게 나오는 이런 소리 말이다. 브라티슬라바 또한 그랬다. 그래서 비행기만 타러 다니지 말고 하루 정도를 머물기로 했다. 그리하여 4월 중순 어느날 나는 브라티슬라바에 도착했다.

비엔나에서 중형 배를 타고 브라티슬라바까지 가는 길은 참으로 독특하였다. 3면이 바다인 한반도에서 태어나서인지 강을 따라 가다 보면 다른 나라가 나온다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날씨는 비가 오다가 해가 비치고 구름이 끼기를 반복했다. 강가에는 많은 집들이 있었다. ‘그림 같은 집’이 여기 도나우 강 주변에도 있었다. 사실 집이라기 보다는 방갈로에 가까운 것이었지만 나에게도 하나만 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드니 그것은 나에게 집과 같이 보였다. 강을 따라가며 바라보는 자연은 반복되어도, 정렬을 이루어 서 있어도, 또는 거칠어도, 어떤 모습을 해도 자연스럽고 아름답다는 생각을 들게하였다. 결국에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자연에 들어있다는 것도 느꼈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숭고함에 빠져 있다 보니 어느새 슬로바키아에 도착 했다. 숙소를 찾아가는 택시안에서 잠깐 실랑이가 있었다. 말도 안되는 돈을 내라고 해서였다. 그리고 숙소에서 나와 허기진 배를 채우려고 식당에 들어갔는데 바깥에 써 붙인 메뉴의 가격과 안에 있는 메뉴의 가격의 차이가 두배나 되었다. 거스름돈도 주지 않아 달라고 해서야 무표정하게 거슬러 주었다.

그런데 여행 중에는 가끔 속아주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눈썰미도 있고 의심도 많아서 속지 않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사람이 많이 오지 않는 조용한 마을에서 이방인이 밥도 먹고 사진도 찍고 하니 일종의 ‘세금’ 같은 걸 내야 하지 않을까.

밥을 먹고 나자 ‘아직도 비가 오는데 나는 여기에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보고 싶은 사람들도 생각났고, 떠나온 사람들도 생각났다. 또한 앞으로 만날 사람들은 누굴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밖으로 나갔다.

브라티슬라바는 그리 크지 않았다. 비가 오는데 구시가지의 이곳 저곳을 걸어 다녔다. 대성당들도 보였고 성도 보였다. 비 때문인지 몇몇 영국인 관광객들을 제외하고는 사람들이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길가다가 성당에서 들려오는 미사곡들 말고는 조용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어떤 갤러리가 있길래 들어갔는데 거기에는 큰 판화가 하나 있었고 ‘CHA Cha …’라고 써있었다. 예전에 친구들이 내 이름을 줄여서 ‘차’라고 불렀는데 그냥  ‘차’라고 부르지 않고 ‘차 차’라고 불렀던 게 생각났다. 그 생각 때문인지 역시 여행은 친구와 같이 해야 해 라고 생각하면서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는 강가에 있었다. 강이 보이는 호텔이 아니라 강위에 있는 호텔이었다. 보텔이라고 부르는데 보트와 호텔을 합친 것인 듯 했다. 침대, 티비, 라디오, 샤워가 다 있어서 하루를 푹 쉬기에 완벽했다. 가장 마음에 든 것은 꼭 보트가 움직이는 것처럼 느끼게 해주는 커다란 창문이었다. 때마침 해가 지고 있는 석양을 한동안 바라보고 있는데 뭉클한 마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혼자 있으면 하게 되는 생각들이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럴 때 더 이상 운명, 우연, 신의 존재 여부, 도덕, 미학 등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는다. 이미 나만의 생의 철학을 나름 단단히 구축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나에게는 그 모든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사람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생명, 삶, 사람 이야기야 말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주제가 아닐까. 그런데 누가 전능으로 세상살이를 말 할 수 있을까. 창 밖으로는 물이 흐르는데 해는 움직이지 않으니까 이상했다. 그래서 정말 내가 쉬고 있구나 라고 느꼈다. 원래 보트 위에 있다면 어디론가 움직여 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샤워를 할 때 배가 한번 아주 심하게 흔들렸다. 순식간에 내 발바닥이 버티고 있는 바닥이 벽으로 바뀔 기세였다.

다음날 비행기를 타기 전에 시간이 있어서 유명하다는 현대 미술관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전날 밤 잠잤던 ‘보트’를 타고 바로 갔으면 좋았으련만 다시 가방을 챙기고 시내 버스를 타러 나갔다. 다누비아나(Danubiana)는 시내에서 먼 곳에 있었다. 먼저 Cunovo라는 마을까지는 버스를 타고 갔다. 황량한 평지를 지나 작은 일반통행 길 어딘가에서 내렸다. 마을   사람들에게 간신히 길을 묻고 갤러리가 있는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는데 날씨가 나에게 깊은 인상이라도 남기려는 것인지 난리법석이였다. 해가 쨍쨍하다가도 아주 거센 바람이 불고 또 비가 오기를 반복했다. 헬리콥터 소리를 내는 바람 때문에 제대로 걷기도 힘들었고 온 몸이 매맞는 듯 아플 정도였다. 그리고는 아주 긴 고속도로를 지나서야 겨우 목적지에 도착했다.

http://www.danubiana.sk/eng/index.html

그렇게 힘들게 찾아온 곳이건만 그곳에서는 고작 현대 미술 작품 몇 개의 전시가 전부였다. 나름 미술사를 공부했기 때문이었을까, 방금 경험한 것이 미술사 그대로를 말해주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정말 고되게 힘들게 그러나 씩씩하고 용감하게 바뀌면서 더 좋아졌다가 더 나빠지기도 하기를 반복한 후에 만들어진 현대 미술은 나의 그런 생각과는 상관 없다는 듯 차가웠다. 하지만 이것 또한 하나의 언어임은 분명했다.

날씨도 차가웠고 사람들도 차가워 보였던 브라티슬라바에서의 하루였다. 그 이유는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이 말한 것처럼 슬로바키아가 외국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외국인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여행기_2011

모로코 대중 교통

유럽이나 미국, 그밖의 선진 국가의 국민이 모로코로 여행을 갈 경우 현지에서 보통은 렌트카를 이용하는 편이다. 모로코라는 나라가 가지고 있는 다양성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자동차가 가장 편리하기 때문이다. 아틀라스 산맥, 대서양과 지중해, 사하라 사막 그리고 그 사이 사이에 있는 페즈와 같은 여러 도시들을 보려면 자동차로 여행하는 것이 유리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시간의 여유가 있고 단체여행이 아니라 혼자 혹은 둘이 여행을 하는 경우 자동차보다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이유는 교통비가 저렴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여행하는 나라에 우리가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버스를 타면 그 나라의 보통사람들의 모습을 더 잘 관찰할 수 있고 택시를 타면 기사와 이런저런 일상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모로코에는 기차는ONCF라는 국영철도가 하나 있는데 노선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즐거운 여행을 값싸게 할 수 있게 해준다. 예를 들어 수도 라밧에서 모로코 동쪽 끝의 알제리아 옆에 있는 우즈다까지는 침대가 있는 밤기차로 열시간 정도 걸리며 기차값은 우리 돈으로 4-5만원 정도이다. 또 카사블랑카에서 마라케쉬까지 일등석으로 타더라도 2만원이 안 들고 3시간 정도 걸린다. 탕헤르에서 페즈까지 이등석을 타면 1만 5천원 미만에 5시간 정도 걸린다. 개인적으로 나는 짧은 거리일 때 기차를 더 편하게 이용했다. 예를 들어서 카사블랑카에서 라밧 처럼 멀지 않은 거리는 기차와 버스 값에 차이가 없을 뿐만 아니라 기차 시간을 미리 알아보지 않아도 되니 편리했다. 기차에는 짐을 가득 실은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있었지만 아이들도 많았다. 핸드폰에 저장해 둔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듣거나 기차 문을 열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서 담배를 피우는 아이들도 있었다.

출발시간이 비교적 정확한 기차와는 달리 시외버스는 따로 버스 시간표가 없는 편이다. 시간표가 있더라도 그냥 가서 커피 한 두잔 정도 마시고 타면 된다. 나는 모로코를 여행할 때 버스를 가장 자주 이용했는데 한번도 내가 알고 있는 시간에 버스가 출발한 적이 없다. 그냥 버스에 인원이 꽉 차면 떠나는 것이다. 그리고 버스는 100% 꽉 찬다.

버스표를 사는 일도 재미있는데 버스 정류장 (gare routier) 에 들어가면 여러 남자들이 큰소리로 말하는 것을 듣게 된다. 한쪽에서는 카사블랑카 티켓을 판매하는 남자가 “Casa, casa, casa” 를 외치고, 그 옆에서는 탕헤르 티켓을 판매하는 또 다른 사람이“Tange tanger tanger” 라고 외친다. 그걸 보면서 나도 티켓 파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그것은 활기차고 독특한 풍경이었다.

간혹 관광객을 보면 천원, 이천원 정도 올려 팔기도 하는데, 나는 미리 현지인들에게 가격을 물어보고 들어갔었기 때문에 속아 넘어가지 않았다. 그리고 들어가자마자 그들이 영어나 불어로 말을 걸더라도 “앗쌀람 알레이쿰”이라고 말한 다음 보기에 가장 순수(?)하거나 정직해 보이는 청년에게 가서 티켓을 사면 속을 일은 없을 것이다.

표를 산 후 버스를 타면 물건을 파는 사람들이 하나 둘 들어온다. 금(?!) 목걸이, 팔찌, 시계, 선글라스, 양말, 과자, 음료, 휴지 등 정말 다양한 물건들을 팔러 들어왔다가 버스가 떠나면 그때서야 뛰어내린다. 물건을 팔러 들어온 사람들이 나가고 한 두시간 정도 늦어버린 여행객이 헐떡거리면서 버스에 뛰어 올라타면 그때서야 버스는 떠난다.

나는 모로코를 여행할 때 하도 현지인 흉내(?!)를 많이 내 오죽하면 그곳 사람들이 나보고 베르베르 사람이냐고 묻기도 했고 그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다. 베르베르족은 산에 사는 한 부족인데 언어도 다르며 훌륭한 상인으로 또한 인색하기로도 유명하다.  어떤 나라를 가나 느끼는 것이지만 새로운 환경이나 경험에 재치있게 대처하고 그 나라 사람을 존중심을 가지고 대하면 그들의 다른 점으로 겪게 되는 경험은 늘 재미있는 사건과 추억으로 남게 된다.

나는 모로코에서 한번도 벽 시계가 제대로 돌아가는 집을 본적이 없다. 과장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왜냐하면 언젠가부터 유심히 시계를 찾아보게 되었는데, 한번도 시계 바늘이 멈춰있지 않은 시계나 정확한 시간을 가리키고 있는 시계를 보지 못했다. 어쩌면 시계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그곳에서 하루를 나누고 있는 것은 시계바늘이 아니라 사람들이 어디에 있건 멀리서나 가까이서 들려오는 모스크의 기도 시간을 알리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그것 말고는 그들은 시간을 굳이 나눌 이유도 없을 지 모른다.

모로코에 가기 전에 읽은 책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서양 여자가 모로코에 잠깐 머물렀었는데 하루는 옆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아! 지금 몇시예요? 약속이 있는데” 라고 말하자 옆 사람이 “여섯시예요. 약속시간이 언젠데요?” 라고 물었다. 여자가 “어머, 약속시간이 다섯시인데, 어떡해요, 늦었어요!” 라며 놀라자 옆 사람이 다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 그렇다면 지금은 네시 반 밖에 안되었어요. 지금 가면 되겠어요.” 좀 과장이 섞이기는 했겠지만 현지에 가보니 정말 실감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우체국 같은 곳을 가보면 볼 일이 있어 들어온 사람들이 꽉 차있는데도 그리고 점심시간이 끝난 지 한참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우체국 직원이 아무도 오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또 누구에게 나 늦었다 라고 말하면, 괜찮아, 괜찮아, 문제없어 라고 말했다. 사실 이런 일들은 살다 보면 분명 짜증스러울 때가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정신을 차릴 수 없게 너무나도 빨리 돌아가는 한국에 있다 가서 더 그렇게 느낀 것일까, 여행자로서는 이런 편안함, 여유로움, 느림이 그 어떤 물질적 성취의 의미를 훨씬 뛰어넘는 소중한 것으로 느껴졌다. 그런 것은 분명 우리가 잃어버린 중요한 부분이며 우리 삶의 물질화, 기계화가 가속화하면 할수록 앞으로 반드시 회복해 나가려고 노력해야 할 정신의 영역인 듯 했다. 이상한 것은 이런 곳에서 지내다 보니 나만의 시간도 훨씬 많아지고 하루도 훨씬 더 긴 듯했다. 마치 하루가 길고 길었던 유년시절로 내가 돌아가 있는 듯 했다.

모로코에는 택시가 두 종류이다. 하나는 타자마자 떠나지만 하나는 손님들이 꽉 차야 떠난다. 바로 그랑 택시와 쁘띠 택시가 그것인데 그랑 택시는 먼 외곽으로 장거리를 가는 택시이고 쁘띠 택시는 시내에서 움직이는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택시이다. 다른 점은 쁘띠 택시는 가끔 합승을 하기는 해도 원칙적으로는 개인이 타는 것이고 그랑 택시는 여러 사람이 합승하는 택시라는 점이다. 최대 6인까지 합승하는데 운전석의 운전사 옆에 2명이 타고  뒤에 4명이 탄다. 보통 한 도시의 외곽에는 꼭 그랑 택시가 모여있는 승차장이 있고 택시는 사람이 꽉 차면 그때 떠난다. 그런데 모로코는 이상하게도 남자들은 거의 다 말라 있고 여자들은 거의 다 퉁퉁하다. 한번은 짐이 많은 아줌마와 동석했는데 난 거의 엉덩이를 들고 한쪽 팔은 뒤로 뻗어 옆 사람과 어깨동무라도 하듯 하고 몸은 가슴쪽으로 잔뜩 움추려 모으고 가야만 했다.

그랑 택시

그랑 택시의 장점은 뭐니뭐니해도 가격이다. 천원, 이천원만 내면 꽤 먼 시외까지 갈 수 있다. 카사블랑카에서 라밧까지 오천원 정도면 된다. 하지만 내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차종이다. 그 전까지 차는 뭐 다 거기서 거기지 했지만 그랑 택시를 본 후에는 꼭 그런 차를 구입하고 싶었다. 빈티지 모델이라서 구입하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언젠가 나도 그랑택시를 한대 몰고 다닐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쁘띠 택시가 도시마다 색이 다르다는 점이다. 라밧에서는 파랑색이고, 페즈에서는 빨간색이며, 태투안에서는 노란색 이다. 버스를 타고 여행하다 보면 어떤 도시를 지나쳐 다음 도시로 갈 때가 있는데 나는 그때마다 창 너머로 택시의 색깔을 보고 “여기는 하얀색이군” 혹은 “아니 노란색이라니!” 라며 혼자 중얼거렸다.

쁘띠 택시들은 대부분 요금기를 갖추고 있지만 간혹 기계가 작동하지 않거나 요금기가 아예 없는 택시도 있다. 그럴 때는 값을 미리 물어보면 된다. 택시 기사들은 한번도 택시 값을 더 부른 적은 없다. 어쩌면 동양인을 배려하는 마음에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내 경험에 의하면 그들은  외국인이라고 거짓말을 쉽게 하는 사람들은 아니다. 이상하게도 모로코에는 도둑이 많다고 하고 소매치기도 많다 하지만 비교적 젊은 여성인데도 나는 그런 것을 경험해 본 적이 없다. 내가 타인을 좋게 보면 그들도 나를 좋게 본다는 말이 맞는 듯 하다. 하지만 혹시 택시 안에서 요금을 너무 많이 부르는 것 같다 싶으면 “Ma’ eindish leflouss” (돈이 없어요!) 라고 외쳐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러면 분명히 처음에는 다툼이 있겠지만 바로 좋게 끝나는 특별한 경험을 할지도 모른다.

여행기_2014

여행을 끝나고 돌아오면 가끔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바로 지금 그 곳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내가 만났던 사람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알 길은 없지만 궁금증 때문에 내 상상력은 자극을 받는다. 아마 이런 이유로 나는 나와의 관계가 두터운 사람들 말고는 인물 사진을 찍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기억이 나지 않을 때에는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지난 시간을 다시 한번 경험하게 되는 것이 즐겁기는 하나 그것은  때로는 너무 비도덕적이고 슬픈 일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이 사진을 찍었을 때에도 나는 그것이 마치 그들의 영혼이라도 빼앗는 것인 듯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졌다.
이 사진을 찍기 전에 벤치에 혼자 앉아 있는 나에게 한 소년이 다가왔다. 그림을 파는 소년이었다. 페루의 도시들 중에서도 쿠스코에서는 유독 미술관들이 많이 보였다. 물론 런던의 대영박물관이나 뉴욕의 현대 미술관 (MOMA) 같은 서구적인 미술관은 아니었지만 작고 옛스러운 장소에 유화와 스케치등이 빼곡하게 전시되고 있었다. 쿠스코에 하루 정도 있다 보면 그 중에서도 많이 보이는 진부한 그림이 바로 잃어버린 도시, 마추피추를 그린 그림이다.  그림을 그린 장소의 구도도 똑같아서 한 사람이 그려서 복사한 것일까 할 정도였다. 내가 직접 가보니 그 장소에서는 마추피추가 공중 도시여서 시야에 모두 들어오고 사진을 찍기에 딱 좋았다. 나에게 다가온 소년도 마추피추 그림들을 가지고 있었다. 도시 뒤에 있는 산맥이 옆으로 보면 옛 잉카의 추장이었을 법한 남자의 옆 모습으로도 보이는 활발한 색감의 그림을 가지고 나에게 온 아이는 내게 “나는 피카소에요” 라고 말했다. 나는 웃으면서 “아니야 내가 피카소야” 라고 받아쳤다. 그랬더니 “아녜요, 당신은 모나리자에요” 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설마 여성으로서 모델은 가능해도 화가는 불가능하다는 말은 아니겠지, 그런 의심이 들었지만 내 짧은 스페인어 실력으로는 더 이상 대화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사실 무엇을 파는 사람과는 대화를 길게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들은 시간이 남아서 놀러 나온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무엇인가를 팔아서 먹고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이 파는 물건을 살 수도 있을 거라는 기대를 주는 것은 좋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새 그림을 그리려고 캔버스에 젯소를 칠하다가 나는 불현듯 그 소년이 생각났다. 그리고 궁금해졌다. 지금 이 시간에도 그 소년은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그림을 팔러 다니고 있을까? 아니면 날이 저물어서 동네 친구들이랑 해적판 디비디라도 보고 있는 것일까? 내가 그곳으로부터 아득히 먼 이곳에서 그에 대해 궁금해 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는 못하겠지만 혹 책을 폈는데 거기에 모나리자가 웃으며 바라보고 있지는 않을까? 그러고 보니 마추피추에 다녀왔지만 그곳을 아직 그림으로 남기지 않았다. 그 때 너무 많은 그림들을 봐서 그런 것일까? 갑자기 온 지구인들이 다 아는 피카소나 모나리자처럼 흔한 것도 때로는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나도 한번 진부한 마추피추를 그려볼까?

시_2015/07

기차는 검은 마을들을 지나친다
정신과는 밤에도 불을 밝혀둔다
눈은 자연스럽게 빛을 쫓는다
움직임에 배가 고프다
지나가는 것들이 내 머리위로도 스친다
비치는 것들이 내 머리위로도 비친다
그런데 내 눈은 어둠도 본다
흐릿히 보이는 사람들 몇명들을 떠올려 보다가 그랬다
나도 어둠속에서는 바라봐 진다
나는 상대적인 것이다

이야기_2014/11

-손-

엄마랑 손을 흔들면서 ‘안녕’이라 인사하고 헤어진 적이 있었던 것 같다. 내 기억속에 있는 이 그림이 진짜 있었던 건지 아닌건지는 잘 모르겠다. 딱히 엄마가 나를 버렸다고 그리고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된 적은 없지만 보통 우리가 커가면서 알게되는 전형적인 모성애적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자란 것은 사실이다. 엄마의 숨결이나 손결이 무언지 모르면서 자랐고 그 나마 내 마음속에 남아있는 엄마와의 가까움은 그저 멀리서 웃으며 ‘안녕’이라 손 흔들어 인사했던 것이 전부인데, 그것 마져도 내가 나중에 스스로 만들어 낸 상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엄마는 늘 어딘가에 나가느라 바빴고 나중에 그것이 데모를 하러 나가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렸을 때는 막연하게 엄마가 나와 동생을 집에 두고 그렇게 나가서 무언가를 할 정도로 그것이 중요한 일인가보다 생각했었다. 그러나 나는 나이가 들어서 인권 문제라는 것을 접하게 되었고 나의동기들이 목소리를 높여 가면서 이 사회에 존재하는 부조리들을 말할때 비로소 그때 엄마가 하려던 것이 무엇인가를 새삼스럽게 알아갔다. 나중에는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엄마의 모습도 보이기 시작했다. 불끈 쥔 그 주먹이 마치 입대신 말해주고 눈대신 쳐다봐주기라도 하는 듯 위로 올라갔다 아래로 내려갔다를 반복하는 모습은 내게 엄마라는 단어를 읽거나 사용할때마다 재 머릿속에 자연스래 떠오르는 형상으로써 나중에는 곧 현실적인 사진이 되었다.
엄마와 관련된 기억들이 어렴풋한것과 반대로 대학교때 들었던 교양 수업시간에 본 그림 중 하나는 내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그 그림안에는 여러명의 사람들 사이에 두남자가 유독 눈에 띄었는데 한 남자는 두번째 손가락만을 치켜든 채 하늘을 가리키고 있었고 또 다른 남자는 손바닥을 활짝 펴서 눞인채로 앞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겉모습은 머털도사랑 다를게 없었다. 외국 한번 나가보지 않고 더 나아가 외국 서적 한번 읽어본 적이 없는 나에게는 다소 생소한 옷차림과 얼굴들이 었는데도 불구하고 이들이 무얼 말하고자 하는지 나는 금방 알수있었다. 엄마의 ‘주먹’ 마냥 그림속 남자의 검지 손가락도 하늘을 향해 있었다. 중력의 법칙에 묶여 살아서일까? 우리는 하늘을 보면서 꿈을 키우고 상상의 날개를 펼치고 이상을 갈구한다. 그래서 그림 속에 또다른 남자는 그것을 허공이라고 부르는 것 같았다. 우리고 결국 한번 더 봐야하는 것은 하늘이 아닌 세상 땅 위라는 것을!
엄마는 내가 취직하는 것도 결혼 하는 것도 한 아이의 아빠가 되는 모습도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그러나 한번도 그것에 대해 아쉬워한 적은 없었다. 내 삶이 결코 자랑스럽지 못해서 차라리 안 보는게 낫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엄마 라는 사람과 나라는 사람 사이에 있는 간격이 아주 처음 우리가 만났을 때 이후로 계속 넓어져왔기 때문에 내가 성인이 되고 나 스스로에게 그리고 나서는 나의 새로운 가족에게 책임감을 느끼며 살기 시작한 이후로는, 엄마라는 사람이 점점 보이지 않게 되었다.
엄마가 돌아가신 날도 나는 엄마곁에 있지 못하였다. 수많은 입국하는 외국인들의 엄지 손가락을 찍고 있다가 잠시 쉬는 시간에 동료랑 가벼운 이야기를 하던 중에 동생에게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 후에도 나는 다시 내 자리로 돌아가서 일을 끝냈다. 그날 밤 비행기로 도착한 한 외국인은 엄지 손가락에 지문이 컴퓨터에 입력되지 않아서 몇번이고 반복해야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남자는 손가락 살을 특히 엄지손가락을 물어뜯는 버릇이 있었던 것이다.

“뜨거운 물” 마추픽추에서 2012

곧게 뻗은 바위는 엊그제 죽은 내 사랑

길쭉히 자라난 산 너머 저 나무는 내 이루지 못한 사랑

그 사이에 가는 빛줄기는 내가 쉬고 있는 숨

자연스럽게 지나가버린

결코, 자연스럽지 못한 사랑 이야기

사람 이야기

가끔은 해가 비추는 언덕 사이로 비가 오기도 하지

나는 그때를 기다려

두 손 내밀어 비를 느끼고

잠에 들고

그 언제가 꿨던 꿈

한번 더 꿔보기도 하고

(차, Aguas Calientes 페루에서 어느 비 많이 오던 날 2012)

A Short Bio_Scene 1. London. Year 2012. Wintertime

 I was half asleep and half awake in a place near a Salsa bar in Charing Cross Road, London. It was past the midnight but the streets were still very busy. People were stumbling and shouting with alcoholic beverages in their hands. Some men were alone and lost, oblivious of their loneliness by intoxication. Some women were struggling with their purses and skirts.

There were old professors, bankers, bookkeepers, thieves, pseudo-hippies, dealers, writers and police on the street. Some were there since they were born but some were there by wrongly turning the wheels of fate.

Each and every one was after the same thing: to find something to fill (feel) their heart with. It was money for some, it was woman for one night for some. But for the two Polish men who were lying on the floor near where I was, it was food.

I felt heavily sleepy but I could not close my eyes because the two guys were fighting in the corner of the bar that smelt urine. One stood up from his sleeping bag and started to beat up the other guy in his sleeping bag. The reason they were fighting was apparently that one of them had to bring food for them that night for it was the man who was lying in the sleeping bag’s turn but didn’t. That’s why the other guy got so crossed. Anger, with hunger made him beat his friend, who was trying to sleep off the hunger inside his sleeping bag smelling people urinating in the corner of the bar. Then soon the guy who beat his friend left. I dozed off a bit and when I was awake to leave, I saw the guy coming back to the friend who was sleeping. He had some food in his hand, for his friend and for himself. He looked like the mother bird.

런던의 차링 크로스 로에 있는 어느 살사 술집 근처에서 나는 비몽사몽간에 빠져 있었다. 자정을 지났건만 길거리는 여전히 소란스러웠다. 많은 사람들이 술을 손에 든 채 곧 넘어질 듯 비틀거리며 소리지르고 있었다. 어떤 남자들은 혼자였고 갈 길을 알지 못하고 있었는데, 술에 취해 외로움도 잊고 있었다. 어떤 여자들은 지갑과 스커트를 챙기느라 바빴다.

길에는 나이 지긋한 교수, 은행원, 회계원, 그리고 도둑, 가짜 히피, 작가, 딜러, 경찰관 등이 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그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단지 운명의 수레바퀴를 잘못 굴려서 와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이 각각 추구하는 것은 단 하나, 마음을 채워줄(느끼게 해줄) 어떤 것을 찾는 것이었다. 어떤 사람에게 그것은 돈이었고 어떤 사람에게 그것은 하룻밤의 여자였다. 그러나 내가 있던 곳 근처에 바닥에 누워 있던 두 폴란드인 남자에게 그것은 먹을 것이었다.

나는 몹시 졸렸으나 오줌 냄새 나는 술집 구석에서 싸우고 있는 그 두 사람 때문에 눈을 감을 수가 없었다. 하나가 결국 침낭에서 일어나더니 침낭에 들어 있는 다른 하나를 때리기 시작했다. 그들이 싸우고 있는 이유는 오늘은 침낭에 누워있는 그 남자가 그들의 먹을 것을 챙겨 와야 했는데 제 할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한쪽이 크게 화가 났던 것이다. 배고픔에 화가 나서 사람들이 술집 구석에서 오줌 누는 냄새를 맡으며 침낭 속에서 배고픔을 잠으로 잊으려고 한 친구를 때리는 지경까지 간 것이었다. 친구를 때리던 남자는 곧 그곳을 떠났고, 나는 잠깐 졸았다. 내가 눈을 뜨고 그 곳을 떠나려는 순간 아까 때리던 남자가 잠든 친구에게 다시 돌아오는 것을 보았다. 손에 자신과 자신이 때렸던 친구가 먹을 것을 들고 있었다. 그는 어미새 같았다.

시_2008(?)

나뭇가지

바람이 엄청 불었다

나쁜 공기에 바랜 하얀 신발처럼

사악한 횟빛 구름은 소리없이 지나간다

구름 지나가는 속도가 빨라진다

그 아래로 가지뿐

남지 않은 나무들이 아우성이다

마치 뼈만 남은 사람들이 모여서 열렬한 토론이라도 하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