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는 사람이 없는 편지_시

다시 돌아오는 고향에는

죽음이 따른다고 하였다는데

새들도 벌래들도

그런 식으로 움직이는데

한번 죽었던 것을 다시 살리는 일은

하느님도 못했던 일

이 시대가 하지 못할 일

이 사람이 하지 못할 일

채워지지 않는 구멍 뚤린 항아리는

마음속에서는 사라지기도 한다

사랑으로 사라지지는 않는다

믿음으로 사라지기도 한다

있던 모든 것이 한순간에

없어졌다

죽였다

그래서 지금은 분산 시켜야 하는 시간

누가 그것을 조금 더 받아 주는 가

진정 누가 있기는 하는 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때

고향으로 가라고 하였다는데

달콤한 옛 추억도 짭짤한 정도 아닌

무섭지도 힘들지도 않을 죽음

이세상에 충실한 건 개 뿐이로구나

 

2016년 2월 11일

여행기_2011

춥지도 덥지도 않고 딱 적당한 온기가 느껴지는 3월 하순의 어느 날 나는 홍콩에서 비엔나로 날아갔다. 오스트리아의 수도인 비엔나는 나에게는 커다란 갤러리로 기억된다. 비엔나는 ‘음악의 도시’라는 명성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나는 거기에 ‘미술의 도시’라는 이름도 붙여주고 싶었다. 알고 지내는 언니 집에 머물렀는데 그 언니가 회사에 가 있는 동안 나는 혼자서 그 도시를 돌아다녔다. 낯선 도시를 종일 혼자 다녀도 외롭지 않았던 것은 그곳에는 많은 갤러리와 뮤지엄이 있었기 때문이다.

비엔나 하면 우선 소시지가 생각나고 가장 살기 좋은 도시 1위라고 어디서 읽은 것도 기억난다. 하이든, 모짜르트, 베토벤, 브람즈, 슈베르트, 쇤베르크, 말러등 고전 음악의 도시로도 알려져 있다. 노래와 왈츠로도 유명한 도나우 강이 있고 아름다운 쇤브룬 궁전도 있다. 하지만 웅장하고 드라마틱한 바로크 스타일의 건물들과 깨끗하고 반듯한 도시의 느낌만이 전부였다면 솔직히 비엔나는 나를 매혹시키기에 부족했을 것이다. 분리주의의 아르 누보적인 빌딜등도 나에게는 너무 ‘유기’적으로 보였다.

비엔나에서는 어디를 가도 보이는 갤러리들 때문에 인지 그저 건물안에 들어가서 유명한 그림을 한 두 개 보는 정도로 끝나는 것이 문화가 아니라는 것을 실감했다. 인간에게 밥 먹는 것 말고 문화라는 것이 얼마만큼 중요하며 필수적인가 하는 것을 깨닫는 날들이 이어졌다. 수많은 아티스트들의 에너지가 수많은 캔버스, 석재, 건물 등에 쏟아 부어졌다고 생각하니 바로크 스타일의 건물들이 단지 디자인만이 아닌 커다란 에너지의 수용소처럼 느껴졌다. 요즘 ‘창의 도시’라 하여 문화적 도시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하나의 유행이 되었다. 새로운 것을 만들고 여러 행사를 보여주는 것도 좋지만 오래된 것에서 나오는 힘과 에너지를 무시하지 않고 조금은 느리게, 또, 깊은 사유를 통해 도시를 차근차근 쌓아 올리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비엔나에서는 그런 일련의 연속이 느껴졌었다.

나는 걷고 또 걷고, 또 걸었다. 하루 종일 묵묵히 걸어다녔다. 내가 입을 열었던 것은 간혹 길을 물어보거나 커피 한 잔을 시킬 때가 전부였다. 그렇게 하루 종일 혼자 걷으면서 사람이 아닌 길거리와 건물들을 사진기에 담고 있으니 나는 꽉 찬 데이트를 하는 충만한 기분이었다. 언덕 길을 올라갈 때는 비가 왔다가 해가 나왔다를 반복했다. 나무들은 아직 잎이 없어 앙상했지만 주위에는 이른 꽃들이 피고 있어서 계절이 봄임을 입증해주었다. 벨베데레(Belvedere)에서 본 ‘봄’ 인가 ‘3월’ 인가 하는 그림이 생각났다. 꽃 대신 앙상한 나뭇가지로 쏟아지는 햇빛 줄기를 그린 작품이다.

벌써 3년이나 지난 지금도 기억나는 비엔나에서 본 그림이 또 하나 있다. 정확히 말하면 그림이라기 보다 화가이겠다. 에곤 쉴레는 수많은 그림책을 통해서는 이미 보았던 화가인데 그의 그림을 직접 본 것은 아마 그 때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던 나에게 그의 그림들은 내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지금도 분명히 기억하는 것은 그의 그림들을 이렇게 내 눈앞에서 하나 하나 자세히 보고 나면 다음에 내가 그림을 그릴 때 내 그림이 얼마나 초라해 보일까 하는 생각이었다. 구스타프 클림트는 그림의 주제에 초점을 둔 것 같았는데 그에 반해 에곤 쉴레의 그림들은 페인트의 감촉에 더 집중되어 있었다. 클림트가 붓의 털로 꽃(花)을 구사했다면 쉴레는 붓의 끄트머리 나무로 그늘(陰)을 표현하고 있는 듯 했다.

여러 미술관이 한 장소에 모여 있는 뮤제움 콰르티어(Museums Quartier) 에 있는 레오폴드 미술관(Leopold Museum)에서만도 하루 종일 쉴레나 클림트등 분리파 예술가들의 그림과 디자인등을 감상할 수 있었다. 그러나 빈 미술사 박물관 (Kunsthistorisches Museum) 에서도 풍부한 소장품들을 볼 수 있었다. 그곳에는 특히 내가 좋아하는 브뤼겔의 그림들이 아주 많이 있었다. 이런 큰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가면 좋아하는 것만 골라 보더라도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시간이 넉넉하다면 천천히 보는 것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꼭 보고 싶은 작품이 있을 경우 그 시대나 방을 테마로 잡아서 집중적으로 보는 게 좋을 것이다.

비엔나에서 내가 많은 갤러리와 미술관을 제대로 잘 볼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장소적 특성 때문이었다. 많은 갤러리와 뮤지엄들을 서로 가까운 위치에 두어서 방문하는 사람들을 편하게 해주었다. 물론 베토벤이나 모짜르트 기념관들 그리고 그 밖의 다른 박물관, 제체시온 (Secession: 분리) 건축들, 훈테르트 바서 하우스, 쉔부른 궁전, 혹은 하벨카와 같은 유명한 카페들을 가려면 지도를 들고 찾아 다녀야 하겠지만, 적어도 미술에 관련해서는 대체로 한곳에 모여있어서 짧은 일정의 방문자가 하루에 여기에도 가고 저기에도 가야 해서 생기는 피로감이나 작은 허탈감 없이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그렇게 돌아다니던 어느 날 나는 느긋하게 마음을 먹고 뮤제움 콰르티어에 있는 탄츠 콰르티어에 들어가서 현대 무용을 하나 보기로 했다. 어떤 특정 작품을 골랐다기보다는 시간이 맞는 날 하는 것을 보기로 했는데 후만 샤리피(Hooman Sharifi)의 작품이었다. 처음에는 4명의 무용수들이 각자 동물소리를 내기 시작하더니 그것이 점점 험한 소리로 커졌는데 귀를 아프게 할 정도로 쩌렁쩌렁한 것이 인간의 목소리의 힘이 손끝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그 후 관중 중 하나가 따라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고 차츰 모든 사람들이 다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어떤 종교의식 같은 분위기였다. 춤만 그런 것은 아닐 테지만 행동과 그에 따른 반작용이 잘 섞이면서 에너지를 공유하는 것이 평화스럽게 느껴졌다. 마지막에는 페르시아 양탄자를 뒤집어 쓰고 있다가 그것을 집어 던진 다음 옷을 벗고 누워 갓 태어난 아기마냥 노래를 부르면서 공연은 끝났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그 도시를 떠났다. 다른 도시들, 다른 나라들에 들렸다. 좋은 에너지를 공유한 사람들도 있었고 그러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다. 중요한 것은 내가 한 도시에 머무르는 동안 다음 도시로 갈 수 있는 만큼의 충분한 에너지를 받았다는 것이다.

내가 그 때 본 많은 그림들은 지금은 아주 잘 기억하지는 못하더라도 당시에는 개인적으로 나와 대화를 했음이 분명하다. 이렇게 지나가는 순간들과 경험들이 하나씩 쌓여 만들어가는 것이 우리 인생의 큰 부분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경험의 매 순간에 우리는 옷을 벗고 다시 한번 태어날 수 있는 것일지 모른다.

여행기_2011

여행할 때 보통은 그동안 가보고 싶어했던 곳을 선택해 가게 되지만 가끔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 가기도 한다. 가보고 싶었던 곳, 아니 꼭 가야만 하는 곳을 가는 경우에는 그 운명적인 장소와 지금이라는 시간이 만나기 때문에 더 이상 지도를 보지 않더라도 또한 호텔을 미리 예약 하지 않더라도 좋다. 어떤 끌림에 이끌려서 간 것인지라 무엇을 먹을까 이곳에서 얼마나 더 머무를 것인가 등을 굳이 생각하고 계획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하지만 간혹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 발이 떨어질 경우 그 곳에서는 무언가를 배워야 한다든지 혹은 어떤 유명한 곳을 찾아 가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슬로바키아의 브라티슬라바가 그런 곳 중의 하나였다.

사실 나는 오스트리아의 비엔나에서 한달 남짓 머물렀었고 거기서 프랑스로 넘어가는 일정이었다. 유럽은 알다시피 저렴한 항공권을 구매할 수 있는 방법이 많이 있지만 긴 여행을 계획한 터라 나는 더욱 저렴한 방법을 선택해야 했다. 그런데 저렴한 것을 선택한다는 것도 더 많은 다른 것을 보고 싶다는 욕구를 위한 핑계였을지 모른다. 아무튼 저렴한 비행기를 찾다 보니 비엔나보다는 브라티슬라바에서 빠리로 가는 비행기가 가격이 훨씬 저렴했고 비엔나에서 브라티슬라바까지는 강을 따라 배를 타고 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워낙 물을 좋아하기 때문에 프랑스에서 모로코에 갈 때는 비행기가 아닌 배를 선택한 적도 있었다.

아무런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은 데도 불구하고 이유 없이 끌리는 나라가 있다면 그와는 반대로 아무 이유 없이 끌리지 않는 나라도 있다. 사실 나는 동유럽 나라에는 끌리지 않는다. 체코, 헝가리, 루마니아 등 동유럽(그들 자신은 중앙 유럽이라고 설득력 있게 주장하는데) 나라에 많은 사람들이 가서 보고는 그곳들이 아름답다고 했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그 쪽에 끌리지 않았다.

슬로바키아는 이름은 멋있게 들렸다. 나는 소위 ‘남성적’ 소리와 ‘여성적’ 소리가 함께 섞여 있는 이름을 좋아한다. ‘슬로’ 처럼 처음에는 부드럽게 가다가 ‘키아’ 하고 강하게 나오는 이런 소리 말이다. 브라티슬라바 또한 그랬다. 그래서 비행기만 타러 다니지 말고 하루 정도를 머물기로 했다. 그리하여 4월 중순 어느날 나는 브라티슬라바에 도착했다.

비엔나에서 중형 배를 타고 브라티슬라바까지 가는 길은 참으로 독특하였다. 3면이 바다인 한반도에서 태어나서인지 강을 따라 가다 보면 다른 나라가 나온다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날씨는 비가 오다가 해가 비치고 구름이 끼기를 반복했다. 강가에는 많은 집들이 있었다. ‘그림 같은 집’이 여기 도나우 강 주변에도 있었다. 사실 집이라기 보다는 방갈로에 가까운 것이었지만 나에게도 하나만 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드니 그것은 나에게 집과 같이 보였다. 강을 따라가며 바라보는 자연은 반복되어도, 정렬을 이루어 서 있어도, 또는 거칠어도, 어떤 모습을 해도 자연스럽고 아름답다는 생각을 들게하였다. 결국에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자연에 들어있다는 것도 느꼈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숭고함에 빠져 있다 보니 어느새 슬로바키아에 도착 했다. 숙소를 찾아가는 택시안에서 잠깐 실랑이가 있었다. 말도 안되는 돈을 내라고 해서였다. 그리고 숙소에서 나와 허기진 배를 채우려고 식당에 들어갔는데 바깥에 써 붙인 메뉴의 가격과 안에 있는 메뉴의 가격의 차이가 두배나 되었다. 거스름돈도 주지 않아 달라고 해서야 무표정하게 거슬러 주었다.

그런데 여행 중에는 가끔 속아주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눈썰미도 있고 의심도 많아서 속지 않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사람이 많이 오지 않는 조용한 마을에서 이방인이 밥도 먹고 사진도 찍고 하니 일종의 ‘세금’ 같은 걸 내야 하지 않을까.

밥을 먹고 나자 ‘아직도 비가 오는데 나는 여기에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보고 싶은 사람들도 생각났고, 떠나온 사람들도 생각났다. 또한 앞으로 만날 사람들은 누굴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밖으로 나갔다.

브라티슬라바는 그리 크지 않았다. 비가 오는데 구시가지의 이곳 저곳을 걸어 다녔다. 대성당들도 보였고 성도 보였다. 비 때문인지 몇몇 영국인 관광객들을 제외하고는 사람들이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길가다가 성당에서 들려오는 미사곡들 말고는 조용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어떤 갤러리가 있길래 들어갔는데 거기에는 큰 판화가 하나 있었고 ‘CHA Cha …’라고 써있었다. 예전에 친구들이 내 이름을 줄여서 ‘차’라고 불렀는데 그냥  ‘차’라고 부르지 않고 ‘차 차’라고 불렀던 게 생각났다. 그 생각 때문인지 역시 여행은 친구와 같이 해야 해 라고 생각하면서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는 강가에 있었다. 강이 보이는 호텔이 아니라 강위에 있는 호텔이었다. 보텔이라고 부르는데 보트와 호텔을 합친 것인 듯 했다. 침대, 티비, 라디오, 샤워가 다 있어서 하루를 푹 쉬기에 완벽했다. 가장 마음에 든 것은 꼭 보트가 움직이는 것처럼 느끼게 해주는 커다란 창문이었다. 때마침 해가 지고 있는 석양을 한동안 바라보고 있는데 뭉클한 마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혼자 있으면 하게 되는 생각들이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럴 때 더 이상 운명, 우연, 신의 존재 여부, 도덕, 미학 등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는다. 이미 나만의 생의 철학을 나름 단단히 구축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나에게는 그 모든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사람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생명, 삶, 사람 이야기야 말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주제가 아닐까. 그런데 누가 전능으로 세상살이를 말 할 수 있을까. 창 밖으로는 물이 흐르는데 해는 움직이지 않으니까 이상했다. 그래서 정말 내가 쉬고 있구나 라고 느꼈다. 원래 보트 위에 있다면 어디론가 움직여 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샤워를 할 때 배가 한번 아주 심하게 흔들렸다. 순식간에 내 발바닥이 버티고 있는 바닥이 벽으로 바뀔 기세였다.

다음날 비행기를 타기 전에 시간이 있어서 유명하다는 현대 미술관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전날 밤 잠잤던 ‘보트’를 타고 바로 갔으면 좋았으련만 다시 가방을 챙기고 시내 버스를 타러 나갔다. 다누비아나(Danubiana)는 시내에서 먼 곳에 있었다. 먼저 Cunovo라는 마을까지는 버스를 타고 갔다. 황량한 평지를 지나 작은 일반통행 길 어딘가에서 내렸다. 마을   사람들에게 간신히 길을 묻고 갤러리가 있는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는데 날씨가 나에게 깊은 인상이라도 남기려는 것인지 난리법석이였다. 해가 쨍쨍하다가도 아주 거센 바람이 불고 또 비가 오기를 반복했다. 헬리콥터 소리를 내는 바람 때문에 제대로 걷기도 힘들었고 온 몸이 매맞는 듯 아플 정도였다. 그리고는 아주 긴 고속도로를 지나서야 겨우 목적지에 도착했다.

http://www.danubiana.sk/eng/index.html

그렇게 힘들게 찾아온 곳이건만 그곳에서는 고작 현대 미술 작품 몇 개의 전시가 전부였다. 나름 미술사를 공부했기 때문이었을까, 방금 경험한 것이 미술사 그대로를 말해주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정말 고되게 힘들게 그러나 씩씩하고 용감하게 바뀌면서 더 좋아졌다가 더 나빠지기도 하기를 반복한 후에 만들어진 현대 미술은 나의 그런 생각과는 상관 없다는 듯 차가웠다. 하지만 이것 또한 하나의 언어임은 분명했다.

날씨도 차가웠고 사람들도 차가워 보였던 브라티슬라바에서의 하루였다. 그 이유는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이 말한 것처럼 슬로바키아가 외국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외국인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여행기_2011

모로코 대중 교통

유럽이나 미국, 그밖의 선진 국가의 국민이 모로코로 여행을 갈 경우 현지에서 보통은 렌트카를 이용하는 편이다. 모로코라는 나라가 가지고 있는 다양성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자동차가 가장 편리하기 때문이다. 아틀라스 산맥, 대서양과 지중해, 사하라 사막 그리고 그 사이 사이에 있는 페즈와 같은 여러 도시들을 보려면 자동차로 여행하는 것이 유리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시간의 여유가 있고 단체여행이 아니라 혼자 혹은 둘이 여행을 하는 경우 자동차보다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이유는 교통비가 저렴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여행하는 나라에 우리가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버스를 타면 그 나라의 보통사람들의 모습을 더 잘 관찰할 수 있고 택시를 타면 기사와 이런저런 일상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모로코에는 기차는ONCF라는 국영철도가 하나 있는데 노선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즐거운 여행을 값싸게 할 수 있게 해준다. 예를 들어 수도 라밧에서 모로코 동쪽 끝의 알제리아 옆에 있는 우즈다까지는 침대가 있는 밤기차로 열시간 정도 걸리며 기차값은 우리 돈으로 4-5만원 정도이다. 또 카사블랑카에서 마라케쉬까지 일등석으로 타더라도 2만원이 안 들고 3시간 정도 걸린다. 탕헤르에서 페즈까지 이등석을 타면 1만 5천원 미만에 5시간 정도 걸린다. 개인적으로 나는 짧은 거리일 때 기차를 더 편하게 이용했다. 예를 들어서 카사블랑카에서 라밧 처럼 멀지 않은 거리는 기차와 버스 값에 차이가 없을 뿐만 아니라 기차 시간을 미리 알아보지 않아도 되니 편리했다. 기차에는 짐을 가득 실은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있었지만 아이들도 많았다. 핸드폰에 저장해 둔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듣거나 기차 문을 열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서 담배를 피우는 아이들도 있었다.

출발시간이 비교적 정확한 기차와는 달리 시외버스는 따로 버스 시간표가 없는 편이다. 시간표가 있더라도 그냥 가서 커피 한 두잔 정도 마시고 타면 된다. 나는 모로코를 여행할 때 버스를 가장 자주 이용했는데 한번도 내가 알고 있는 시간에 버스가 출발한 적이 없다. 그냥 버스에 인원이 꽉 차면 떠나는 것이다. 그리고 버스는 100% 꽉 찬다.

버스표를 사는 일도 재미있는데 버스 정류장 (gare routier) 에 들어가면 여러 남자들이 큰소리로 말하는 것을 듣게 된다. 한쪽에서는 카사블랑카 티켓을 판매하는 남자가 “Casa, casa, casa” 를 외치고, 그 옆에서는 탕헤르 티켓을 판매하는 또 다른 사람이“Tange tanger tanger” 라고 외친다. 그걸 보면서 나도 티켓 파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그것은 활기차고 독특한 풍경이었다.

간혹 관광객을 보면 천원, 이천원 정도 올려 팔기도 하는데, 나는 미리 현지인들에게 가격을 물어보고 들어갔었기 때문에 속아 넘어가지 않았다. 그리고 들어가자마자 그들이 영어나 불어로 말을 걸더라도 “앗쌀람 알레이쿰”이라고 말한 다음 보기에 가장 순수(?)하거나 정직해 보이는 청년에게 가서 티켓을 사면 속을 일은 없을 것이다.

표를 산 후 버스를 타면 물건을 파는 사람들이 하나 둘 들어온다. 금(?!) 목걸이, 팔찌, 시계, 선글라스, 양말, 과자, 음료, 휴지 등 정말 다양한 물건들을 팔러 들어왔다가 버스가 떠나면 그때서야 뛰어내린다. 물건을 팔러 들어온 사람들이 나가고 한 두시간 정도 늦어버린 여행객이 헐떡거리면서 버스에 뛰어 올라타면 그때서야 버스는 떠난다.

나는 모로코를 여행할 때 하도 현지인 흉내(?!)를 많이 내 오죽하면 그곳 사람들이 나보고 베르베르 사람이냐고 묻기도 했고 그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다. 베르베르족은 산에 사는 한 부족인데 언어도 다르며 훌륭한 상인으로 또한 인색하기로도 유명하다.  어떤 나라를 가나 느끼는 것이지만 새로운 환경이나 경험에 재치있게 대처하고 그 나라 사람을 존중심을 가지고 대하면 그들의 다른 점으로 겪게 되는 경험은 늘 재미있는 사건과 추억으로 남게 된다.

나는 모로코에서 한번도 벽 시계가 제대로 돌아가는 집을 본적이 없다. 과장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왜냐하면 언젠가부터 유심히 시계를 찾아보게 되었는데, 한번도 시계 바늘이 멈춰있지 않은 시계나 정확한 시간을 가리키고 있는 시계를 보지 못했다. 어쩌면 시계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그곳에서 하루를 나누고 있는 것은 시계바늘이 아니라 사람들이 어디에 있건 멀리서나 가까이서 들려오는 모스크의 기도 시간을 알리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그것 말고는 그들은 시간을 굳이 나눌 이유도 없을 지 모른다.

모로코에 가기 전에 읽은 책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서양 여자가 모로코에 잠깐 머물렀었는데 하루는 옆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아! 지금 몇시예요? 약속이 있는데” 라고 말하자 옆 사람이 “여섯시예요. 약속시간이 언젠데요?” 라고 물었다. 여자가 “어머, 약속시간이 다섯시인데, 어떡해요, 늦었어요!” 라며 놀라자 옆 사람이 다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 그렇다면 지금은 네시 반 밖에 안되었어요. 지금 가면 되겠어요.” 좀 과장이 섞이기는 했겠지만 현지에 가보니 정말 실감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우체국 같은 곳을 가보면 볼 일이 있어 들어온 사람들이 꽉 차있는데도 그리고 점심시간이 끝난 지 한참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우체국 직원이 아무도 오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또 누구에게 나 늦었다 라고 말하면, 괜찮아, 괜찮아, 문제없어 라고 말했다. 사실 이런 일들은 살다 보면 분명 짜증스러울 때가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정신을 차릴 수 없게 너무나도 빨리 돌아가는 한국에 있다 가서 더 그렇게 느낀 것일까, 여행자로서는 이런 편안함, 여유로움, 느림이 그 어떤 물질적 성취의 의미를 훨씬 뛰어넘는 소중한 것으로 느껴졌다. 그런 것은 분명 우리가 잃어버린 중요한 부분이며 우리 삶의 물질화, 기계화가 가속화하면 할수록 앞으로 반드시 회복해 나가려고 노력해야 할 정신의 영역인 듯 했다. 이상한 것은 이런 곳에서 지내다 보니 나만의 시간도 훨씬 많아지고 하루도 훨씬 더 긴 듯했다. 마치 하루가 길고 길었던 유년시절로 내가 돌아가 있는 듯 했다.

모로코에는 택시가 두 종류이다. 하나는 타자마자 떠나지만 하나는 손님들이 꽉 차야 떠난다. 바로 그랑 택시와 쁘띠 택시가 그것인데 그랑 택시는 먼 외곽으로 장거리를 가는 택시이고 쁘띠 택시는 시내에서 움직이는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택시이다. 다른 점은 쁘띠 택시는 가끔 합승을 하기는 해도 원칙적으로는 개인이 타는 것이고 그랑 택시는 여러 사람이 합승하는 택시라는 점이다. 최대 6인까지 합승하는데 운전석의 운전사 옆에 2명이 타고  뒤에 4명이 탄다. 보통 한 도시의 외곽에는 꼭 그랑 택시가 모여있는 승차장이 있고 택시는 사람이 꽉 차면 그때 떠난다. 그런데 모로코는 이상하게도 남자들은 거의 다 말라 있고 여자들은 거의 다 퉁퉁하다. 한번은 짐이 많은 아줌마와 동석했는데 난 거의 엉덩이를 들고 한쪽 팔은 뒤로 뻗어 옆 사람과 어깨동무라도 하듯 하고 몸은 가슴쪽으로 잔뜩 움추려 모으고 가야만 했다.

그랑 택시

그랑 택시의 장점은 뭐니뭐니해도 가격이다. 천원, 이천원만 내면 꽤 먼 시외까지 갈 수 있다. 카사블랑카에서 라밧까지 오천원 정도면 된다. 하지만 내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차종이다. 그 전까지 차는 뭐 다 거기서 거기지 했지만 그랑 택시를 본 후에는 꼭 그런 차를 구입하고 싶었다. 빈티지 모델이라서 구입하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언젠가 나도 그랑택시를 한대 몰고 다닐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쁘띠 택시가 도시마다 색이 다르다는 점이다. 라밧에서는 파랑색이고, 페즈에서는 빨간색이며, 태투안에서는 노란색 이다. 버스를 타고 여행하다 보면 어떤 도시를 지나쳐 다음 도시로 갈 때가 있는데 나는 그때마다 창 너머로 택시의 색깔을 보고 “여기는 하얀색이군” 혹은 “아니 노란색이라니!” 라며 혼자 중얼거렸다.

쁘띠 택시들은 대부분 요금기를 갖추고 있지만 간혹 기계가 작동하지 않거나 요금기가 아예 없는 택시도 있다. 그럴 때는 값을 미리 물어보면 된다. 택시 기사들은 한번도 택시 값을 더 부른 적은 없다. 어쩌면 동양인을 배려하는 마음에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내 경험에 의하면 그들은  외국인이라고 거짓말을 쉽게 하는 사람들은 아니다. 이상하게도 모로코에는 도둑이 많다고 하고 소매치기도 많다 하지만 비교적 젊은 여성인데도 나는 그런 것을 경험해 본 적이 없다. 내가 타인을 좋게 보면 그들도 나를 좋게 본다는 말이 맞는 듯 하다. 하지만 혹시 택시 안에서 요금을 너무 많이 부르는 것 같다 싶으면 “Ma’ eindish leflouss” (돈이 없어요!) 라고 외쳐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러면 분명히 처음에는 다툼이 있겠지만 바로 좋게 끝나는 특별한 경험을 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