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_2014

여행을 끝나고 돌아오면 가끔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바로 지금 그 곳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내가 만났던 사람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알 길은 없지만 궁금증 때문에 내 상상력은 자극을 받는다. 아마 이런 이유로 나는 나와의 관계가 두터운 사람들 말고는 인물 사진을 찍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기억이 나지 않을 때에는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지난 시간을 다시 한번 경험하게 되는 것이 즐겁기는 하나 그것은  때로는 너무 비도덕적이고 슬픈 일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이 사진을 찍었을 때에도 나는 그것이 마치 그들의 영혼이라도 빼앗는 것인 듯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졌다.
이 사진을 찍기 전에 벤치에 혼자 앉아 있는 나에게 한 소년이 다가왔다. 그림을 파는 소년이었다. 페루의 도시들 중에서도 쿠스코에서는 유독 미술관들이 많이 보였다. 물론 런던의 대영박물관이나 뉴욕의 현대 미술관 (MOMA) 같은 서구적인 미술관은 아니었지만 작고 옛스러운 장소에 유화와 스케치등이 빼곡하게 전시되고 있었다. 쿠스코에 하루 정도 있다 보면 그 중에서도 많이 보이는 진부한 그림이 바로 잃어버린 도시, 마추피추를 그린 그림이다.  그림을 그린 장소의 구도도 똑같아서 한 사람이 그려서 복사한 것일까 할 정도였다. 내가 직접 가보니 그 장소에서는 마추피추가 공중 도시여서 시야에 모두 들어오고 사진을 찍기에 딱 좋았다. 나에게 다가온 소년도 마추피추 그림들을 가지고 있었다. 도시 뒤에 있는 산맥이 옆으로 보면 옛 잉카의 추장이었을 법한 남자의 옆 모습으로도 보이는 활발한 색감의 그림을 가지고 나에게 온 아이는 내게 “나는 피카소에요” 라고 말했다. 나는 웃으면서 “아니야 내가 피카소야” 라고 받아쳤다. 그랬더니 “아녜요, 당신은 모나리자에요” 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설마 여성으로서 모델은 가능해도 화가는 불가능하다는 말은 아니겠지, 그런 의심이 들었지만 내 짧은 스페인어 실력으로는 더 이상 대화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사실 무엇을 파는 사람과는 대화를 길게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들은 시간이 남아서 놀러 나온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무엇인가를 팔아서 먹고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이 파는 물건을 살 수도 있을 거라는 기대를 주는 것은 좋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새 그림을 그리려고 캔버스에 젯소를 칠하다가 나는 불현듯 그 소년이 생각났다. 그리고 궁금해졌다. 지금 이 시간에도 그 소년은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그림을 팔러 다니고 있을까? 아니면 날이 저물어서 동네 친구들이랑 해적판 디비디라도 보고 있는 것일까? 내가 그곳으로부터 아득히 먼 이곳에서 그에 대해 궁금해 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는 못하겠지만 혹 책을 폈는데 거기에 모나리자가 웃으며 바라보고 있지는 않을까? 그러고 보니 마추피추에 다녀왔지만 그곳을 아직 그림으로 남기지 않았다. 그 때 너무 많은 그림들을 봐서 그런 것일까? 갑자기 온 지구인들이 다 아는 피카소나 모나리자처럼 흔한 것도 때로는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나도 한번 진부한 마추피추를 그려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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