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_2011

여행과 시간

 

프랑스 마르세유 근방에 있는 바닷가 절벽 마을에서 쓴 시다. 배를 타고 나가면 기름에 떠있는 듯한 부드러운 파도 때문에 마치 내가 양탄자를 타고 날아다니는 기분이었다. 수영이 몹시 하고 싶었지만 바다 수영을 하기에는 내 수영 실력이 모자랐다. 모두 수영복을 입고 배를 탔기에 친구들은 바다에 들어가 춥다고 소리치면서도 수영을 했다. 그들이 수영해서 절벽 아래 있는 동굴로 가 그 속에 들어갔다 나오면서 너무 좋다고 외칠 때 나는 많이 부러웠지만 그저 배 위에서 그들의 사진을 찍어주면서 ‘타인의 행복’을 내 행복으로 여기는 부차적 행복에 만족해야 했다.

사실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지 않았다면 나는 돌아버렸을지도 모른다. 프랑스인들, 아니 ‘빠리지앵’들, 아니 예술가들의 변태적이며 자기파괴적인 행동과 말 때문에 나는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고 화도 나도 슬프기도 했었다. 프랑스어로 ‘ennui’ 라고 하는 ‘권태’는 나도 잘 안다고 믿었지만, 이들의 복잡한 개인사 그리고 거기에 뭐든 더 얹어 복잡하게 만들려고 하는 그들의 행태가 내 마음을 지치게 하고 지루하게 만들었었다. 하도 재미가 없어서 어서 이곳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만 했었다. 그들은 이런 아름다운 자연 그리고 아름다운 건축물 등을 가질 자격도 없는 사람들이라는 극단적인 생각도 했으며, 그들은 웃는 것조차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배를 타고 나가자 끊임없이 이어지는 ‘선’ 을 보면서 이것이 인간이 갈망하는 그리고 또한 두려워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먼저 가졌던 감정에  대한 치유가 되었다. 나는 내 앞에 불행과 아픔을 보는 것을 유난히 힘들어한다. 어쩌면 내 친구들이 가지고 있던 부정적인 면들을 보듬어줌으로써 내가 그들의 상태를 나아지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것을 힘들어 하는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의 바램과 욕구가 크면 클수록 그리고 우리의 철학이랄까 세계관이 크면 클수록 어쩌면 두려움도 슬픔도 더 커질 수 있을 지 모른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모든 것을 무의미한 것으로 놓아버리고 따분해지면서 세상살이를 비관적으로 볼 수 밖에 없게 될지 모른다.

나는 친구한테 계속 ’J’ai les cafards’ 라고 말했다. ‘Le cafard’는 ‘바퀴벌레’다. ‘Avoir le cafard’(‘바퀴벌레를 갖다’) 는 ‘우울하다’는 뜻의 프랑스어 숙어인데, 마침 내 기분을 잘 표현해주는 듯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cafard는 ‘바퀴벌레’이기 전에 아랍어에서 유래된 ‘비신도’라는 뜻도 있다. 인간은 어떤 것이든 믿음을 하나쯤은 가지고 있어야 하는 나약한 존재라는 걸 새삼스럽게 깨닫게 해주는 말이었다.

본질적으로 들어가면 믿음이라는 것은 결국 생존과 매우 가깝다. 믿음이 생기면 욕구도 생긴다. 무엇을 하고 싶다, 무엇을 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을 해야겠다. 절벽 아래 있는 동굴은 밖에서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다. 하지만 그곳에 들어갈 수 있으며 들어갔다가 다시   나올 수 있다고 믿었기에 친구들은 과감하게 그곳에 들어갔을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 무엇이 있을까 하는 궁금증도 그런 ‘용기’를 주는데 한 몫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혹 그들은 다시 나올 수 있을까 하는 문제는 염두에 두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서 우리는 간혹 다시 나올 수 없는 어둠을 향해 나중을 생각하지 않고 두려움 없이 저벅저벅 들어가 기도 하는 것이 아닐까? 많은 공포영화의 주인공들이 바로 그런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옆집에 살고 있는 어부가 우리가 빠리에서 놀러왔다는 소식을 듣고 아침에 잡은 고등어를 선물로 주었다. 회를 해먹으려고 다들 여러 양념들을 챙기고 올리브유를 꺼내고 포크와 나이프로 여기저기 칼집을 냈다. 맛있게 먹고 싶다는 욕망이겠다. 우리는 점심으로 고등어 회를 먹고 일광욕을 즐기면서 책을 읽었다. 나는 그러다가 맨 앞에 적은 ‘시’를 썼는데, 친구들은 ‘쟤가 벌써 프랑스어로 시를 썼어’라며 웃었다.

‘믿음’이라는 단어는 ‘사랑’이라는 단어만큼이나 너무나도 큰 것이어서 왠지 거기에 대해서는 100퍼센트의 확신이 있어야 할 것 같다. 그렇다면 그것은 모든 것을 흑과 백으로 나눠버린 언어적인 이해가 아닐까.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는 지금도 제사를 지내고 굿을 하는데 그렇다고 그들이 무교거나 혹은 유교라는 종교적 신앙심을 확신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어가  쉬워서 시를 쓴 것은 아니다. 지금도 프랑스 사람 앞에서는 일부러라도 한 마디도 하지 못한다. 그런데 프랑스에서, 프랑스 친구들 사이에서 3,4주를 지내고 그 시간을 돌이켜 볼 때  시가 나온 것은 시기적으로 자연스러운 것이었다고 믿는다. 그것은 생존하는데 필요했던 것을 깨달았을 때 나오는 자발적인 행위였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힘들다. 고로 창작한다’ 인 것이다.

계획을 세우고 모든 것을 논리적으로 따져보는 것은 삶을 ‘이롭게’ 사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연적으로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것을 아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마다 모두 다른 환경에서 살기 때문에 모두가 이렇게 저렇게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으며 또한 불공평하다. 쉽고 단순하며 옳고 공평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자연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을 끄집어 내는 것이다. 그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현대사회는 우리에게 점점 자연적인 것에서 멀리 떠나게 하고 자연상태를 잊으라고 하지만 그럴수록 자연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우리 개개인이 스스로 해야 할 숙제이다.

프랑스를 떠나는 날 쎄뜨에 있는 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한 여자가 알 수 없는 말을 하고 이상한 몸짓을 하며 풀어헤친 머리칼을 휘날리면서 카페로 들어왔다가 나갔다를 반복했다. 바텐더가 나에게 ‘봐봐 저 미친 여자’라고 했다. 나는 되물었다. ‘누구는 안 그런가요?’ 사람들은 잊은 듯 하다. 인간은 아니 모든 생명은 그리고 더 나아가 우주는 사실 아주 미친 곳이라는 것을. 우리는 보통과 다른 것을 미쳤다고 표현하지만 사실은 보통이라는 것은 진짜 모습을 감추려는 인간의 헛된 허망한 몸짓의 하나가 아닐까.

나는 한 나라안에서도 어떤 도시에는 비가 오고 어떤 도시는 기온이 영도로 떨어지고 또 다른 도시에서는 거의 섭씨 30도에 육박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물론 같은 시간대에서 말이다. 프랑스에 있을 때 한번은 자기 전에 내가 한 친구에게 공간보다 시간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랬더니 나이가 꽤 많은 그 친구가 과거에 자신이 저질렀던 모든 실수는 그걸 몰라서 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 가운데 많은 것이 자신의 의지로 바꿀 수 없는 것들이다. 지구는 돌고 있고 무수한 생명이 움직이며 살아있다. 그런데 그것을 유심히 관찰하다 보면 무슨 일이 왜 일어나는지에 대한 답이 나올 때가 있다. 그것을 일러 ‘타이밍’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너무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않고 나조차도 제 3자 입장에서 바라보다 보면 결국 사는 것은 자연의 일부가 되는 일이다. 물리적인 공간은 우리가 쉽게 바꿀 수 없다. 공간이 주는 좋은 점과 나쁜 점은 그냥 담담히 받아들이게 된다. 하지만 혹 바꿀 수가 있다고 해도 결국에는 제자리 걸음일 때가 많다. 각자 안에 들어 있는 마음이 쉽게 바뀌지 않고 기억 속에 자리잡고 있는 버릇도 쉽게 고쳐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시간’은 제어할 수 있다. 쉬운 예를 들면, 오늘은 이것을 하고 그래서 뒤따라오는 일들인 저것은 내일 한다 라고 정하는 것이다.

내가 프랑스에 간 일차적인 이유는 그곳에 친구가 있기 때문이었다. 한 달 동안 그 친구 집에서 지내면서 함께 시간을 보내려는 생각이었다. 내가 프랑스에 도착하자 그 친구에게 어떤 개인적인 일이 있었는데 내가 온 것이 기막힌(!) ‘타이밍’이 되었다. 나의 개인적 ‘최종 목적지’는 모로코였는데 프랑스는 모로코를 가기 위한 관문이었다. 프랑스에서 나는 프랑스어로 많이 말하지는 않았지만 한달 동안 내 귀는 열심히 프랑스어를 들었는데 그것이 내가 모로코에 갔을 때 도움이 되었다. 모로코에서 영어를 못하는 사람을 만나도 또 내가 아랍어를 잘 하지 못해도 자연스럽게 소통하면서 지낼 수 있었던 것이다.

‘여행을 떠난다’고 할 때 우리는 보통 공간을 더 생각하게 된다. 어디에서 어디로 이동하는 것이 여행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시 잘 생각해보면 시간의 중요성이 공간의 중요성만큼 혹은 그보다 더 크다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우리는 여행을 갈 때 ‘어디’에 대해 알려고 하는데 그러기 전에 왜 우리는 그곳에 가려고 하는지 그 이유 혹은 계기와 또한 ‘지금’이라는 혹은 ‘한 달 후’라는 시간적 개념을 조금 더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