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_2011

춥지도 덥지도 않고 딱 적당한 온기가 느껴지는 3월 하순의 어느 날 나는 홍콩에서 비엔나로 날아갔다. 오스트리아의 수도인 비엔나는 나에게는 커다란 갤러리로 기억된다. 비엔나는 ‘음악의 도시’라는 명성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나는 거기에 ‘미술의 도시’라는 이름도 붙여주고 싶었다. 알고 지내는 언니 집에 머물렀는데 그 언니가 회사에 가 있는 동안 나는 혼자서 그 도시를 돌아다녔다. 낯선 도시를 종일 혼자 다녀도 외롭지 않았던 것은 그곳에는 많은 갤러리와 뮤지엄이 있었기 때문이다.

비엔나 하면 우선 소시지가 생각나고 가장 살기 좋은 도시 1위라고 어디서 읽은 것도 기억난다. 하이든, 모짜르트, 베토벤, 브람즈, 슈베르트, 쇤베르크, 말러등 고전 음악의 도시로도 알려져 있다. 노래와 왈츠로도 유명한 도나우 강이 있고 아름다운 쇤브룬 궁전도 있다. 하지만 웅장하고 드라마틱한 바로크 스타일의 건물들과 깨끗하고 반듯한 도시의 느낌만이 전부였다면 솔직히 비엔나는 나를 매혹시키기에 부족했을 것이다. 분리주의의 아르 누보적인 빌딜등도 나에게는 너무 ‘유기’적으로 보였다.

비엔나에서는 어디를 가도 보이는 갤러리들 때문에 인지 그저 건물안에 들어가서 유명한 그림을 한 두 개 보는 정도로 끝나는 것이 문화가 아니라는 것을 실감했다. 인간에게 밥 먹는 것 말고 문화라는 것이 얼마만큼 중요하며 필수적인가 하는 것을 깨닫는 날들이 이어졌다. 수많은 아티스트들의 에너지가 수많은 캔버스, 석재, 건물 등에 쏟아 부어졌다고 생각하니 바로크 스타일의 건물들이 단지 디자인만이 아닌 커다란 에너지의 수용소처럼 느껴졌다. 요즘 ‘창의 도시’라 하여 문화적 도시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하나의 유행이 되었다. 새로운 것을 만들고 여러 행사를 보여주는 것도 좋지만 오래된 것에서 나오는 힘과 에너지를 무시하지 않고 조금은 느리게, 또, 깊은 사유를 통해 도시를 차근차근 쌓아 올리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비엔나에서는 그런 일련의 연속이 느껴졌었다.

나는 걷고 또 걷고, 또 걸었다. 하루 종일 묵묵히 걸어다녔다. 내가 입을 열었던 것은 간혹 길을 물어보거나 커피 한 잔을 시킬 때가 전부였다. 그렇게 하루 종일 혼자 걷으면서 사람이 아닌 길거리와 건물들을 사진기에 담고 있으니 나는 꽉 찬 데이트를 하는 충만한 기분이었다. 언덕 길을 올라갈 때는 비가 왔다가 해가 나왔다를 반복했다. 나무들은 아직 잎이 없어 앙상했지만 주위에는 이른 꽃들이 피고 있어서 계절이 봄임을 입증해주었다. 벨베데레(Belvedere)에서 본 ‘봄’ 인가 ‘3월’ 인가 하는 그림이 생각났다. 꽃 대신 앙상한 나뭇가지로 쏟아지는 햇빛 줄기를 그린 작품이다.

벌써 3년이나 지난 지금도 기억나는 비엔나에서 본 그림이 또 하나 있다. 정확히 말하면 그림이라기 보다 화가이겠다. 에곤 쉴레는 수많은 그림책을 통해서는 이미 보았던 화가인데 그의 그림을 직접 본 것은 아마 그 때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던 나에게 그의 그림들은 내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지금도 분명히 기억하는 것은 그의 그림들을 이렇게 내 눈앞에서 하나 하나 자세히 보고 나면 다음에 내가 그림을 그릴 때 내 그림이 얼마나 초라해 보일까 하는 생각이었다. 구스타프 클림트는 그림의 주제에 초점을 둔 것 같았는데 그에 반해 에곤 쉴레의 그림들은 페인트의 감촉에 더 집중되어 있었다. 클림트가 붓의 털로 꽃(花)을 구사했다면 쉴레는 붓의 끄트머리 나무로 그늘(陰)을 표현하고 있는 듯 했다.

여러 미술관이 한 장소에 모여 있는 뮤제움 콰르티어(Museums Quartier) 에 있는 레오폴드 미술관(Leopold Museum)에서만도 하루 종일 쉴레나 클림트등 분리파 예술가들의 그림과 디자인등을 감상할 수 있었다. 그러나 빈 미술사 박물관 (Kunsthistorisches Museum) 에서도 풍부한 소장품들을 볼 수 있었다. 그곳에는 특히 내가 좋아하는 브뤼겔의 그림들이 아주 많이 있었다. 이런 큰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가면 좋아하는 것만 골라 보더라도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시간이 넉넉하다면 천천히 보는 것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꼭 보고 싶은 작품이 있을 경우 그 시대나 방을 테마로 잡아서 집중적으로 보는 게 좋을 것이다.

비엔나에서 내가 많은 갤러리와 미술관을 제대로 잘 볼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장소적 특성 때문이었다. 많은 갤러리와 뮤지엄들을 서로 가까운 위치에 두어서 방문하는 사람들을 편하게 해주었다. 물론 베토벤이나 모짜르트 기념관들 그리고 그 밖의 다른 박물관, 제체시온 (Secession: 분리) 건축들, 훈테르트 바서 하우스, 쉔부른 궁전, 혹은 하벨카와 같은 유명한 카페들을 가려면 지도를 들고 찾아 다녀야 하겠지만, 적어도 미술에 관련해서는 대체로 한곳에 모여있어서 짧은 일정의 방문자가 하루에 여기에도 가고 저기에도 가야 해서 생기는 피로감이나 작은 허탈감 없이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그렇게 돌아다니던 어느 날 나는 느긋하게 마음을 먹고 뮤제움 콰르티어에 있는 탄츠 콰르티어에 들어가서 현대 무용을 하나 보기로 했다. 어떤 특정 작품을 골랐다기보다는 시간이 맞는 날 하는 것을 보기로 했는데 후만 샤리피(Hooman Sharifi)의 작품이었다. 처음에는 4명의 무용수들이 각자 동물소리를 내기 시작하더니 그것이 점점 험한 소리로 커졌는데 귀를 아프게 할 정도로 쩌렁쩌렁한 것이 인간의 목소리의 힘이 손끝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그 후 관중 중 하나가 따라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고 차츰 모든 사람들이 다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어떤 종교의식 같은 분위기였다. 춤만 그런 것은 아닐 테지만 행동과 그에 따른 반작용이 잘 섞이면서 에너지를 공유하는 것이 평화스럽게 느껴졌다. 마지막에는 페르시아 양탄자를 뒤집어 쓰고 있다가 그것을 집어 던진 다음 옷을 벗고 누워 갓 태어난 아기마냥 노래를 부르면서 공연은 끝났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그 도시를 떠났다. 다른 도시들, 다른 나라들에 들렸다. 좋은 에너지를 공유한 사람들도 있었고 그러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다. 중요한 것은 내가 한 도시에 머무르는 동안 다음 도시로 갈 수 있는 만큼의 충분한 에너지를 받았다는 것이다.

내가 그 때 본 많은 그림들은 지금은 아주 잘 기억하지는 못하더라도 당시에는 개인적으로 나와 대화를 했음이 분명하다. 이렇게 지나가는 순간들과 경험들이 하나씩 쌓여 만들어가는 것이 우리 인생의 큰 부분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경험의 매 순간에 우리는 옷을 벗고 다시 한번 태어날 수 있는 것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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